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6월 17일 뚝섬 서울숲에서


오리 두 마리가 헤엄을 친다.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다.

새끼 오리: 엄마, 엄마. 물에만 들어오면 꼭 누가 따라오는 거 같아.
엄마 오리: 응, 그건 바로 너의 발자국이야.
새끼 오리: 내 발자국? 물에 발자국이 생겨?
엄마 오리: 물결이 바로 네 발자국이야. 네가 물에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네 발자국이 꼬리를 끌면서 네 뒤로 바짝 따라붙어. 절대로 떨어지는 법이 없지. 물이 잔잔할 때는 그 발자국이 더욱 완연하단다. 바람이 불어서 물결이 세게 일면 네 발자국이 그 물결에 묻힐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안간힘을 다해 너를 따라붙지.
새끼 오리: 그럼 내 발자국은 평생 나를 쫓아다녀?
엄마 오리: 그럼, 평생 쫓아다니지.
새끼 오리: 그럼 지겹지 않나. 평생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
엄마 오리: 왜 지겹기도 하겠지. 그럴 것 같다 싶으면 우리가 슬쩍 뭍으로 올라가 물에서 발을 빼주는 게 좋아.
새끼 오리: 어, 뭍에서도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데…
엄마 오리: 뭍의 발자국은 물에 있을 때와는 좀 달라. 뭍에선 우리가 발자국을 뚝뚝 흘리면서 다니지. 뭍에선 우리가 발자국을 흘리면 발자국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굳어져 꼼짝도 못해.
새끼 오리: 그럼 뭍에선 우리가 물 떨어뜨리듯이 발자국을 뚝뚝 떨구며 다니는 거구, 물에 가면 그때부턴 발자국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네.
엄마 오리: 응, 그런 거지. 물이 졸졸 거리며 흐르는 것도 발자국으로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던 습성이 그대로 남아서 그런 거야.
새끼 오리: 응, 그런 거구나.
엄마 오리: 물 속에선 가끔 물 속으로 무자맥질을 하면 따라오던 우리의 발자국이 우리를 놓치고 당황해 하기도 하지. 우리가 잠수타면 우리의 발자국도 잠깐이지만 우리를 놓치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찾아 뱅글뱅글 돌기도 해. 그렇게 한번씩 발자국 놀리는 것도 참 재미나.
새끼 오리: 아하, 그래서 잠수탈 때 재미났던 거구나.
엄마 오리: 그럼. 세상이 생각보다 재미난 구석이 많아. 발자국 하나에도 그런 재미가 있거든.
새끼 오리: 알았어, 엄마. 앞으로 내 발자국과 잘 놀아봐야 겠어.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6월 17일 뚝섬 서울숲에서

6 thoughts on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

  1. 아기 오리(새끼 오리가 뭐여^^) : 엄마 난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엄마 오리 : 그래 넌 어디든 갈 수 있단다. 근데 얼마나 멀리갈건데…
    아기 오리 : 난 오리나 갈 수 있어~~~
    엄마 오리 : 허걱~~^^

    1. 특히 물결을 뒤로 가르면서 가는데는
      오리만한게 없더라구요.
      오리를 멋지게 찍으려면 높이가 확보되야 하는데
      서울숲은 다리가 구름다리라서 그게 가능해요.
      강촌에서도 그런 높이가 확보되더군요.

  2. 삶의 궤적은 우리를 영원히 죽음이란 문턱에 다다를 때까지
    그리고 흙으로 돌아갈 때도 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란
    층층의 궤적 사이에 남게 되겠지요…..

    그리고 어떤이는 역사의 궤적을 따라서 그 발자욱이 남겠지요.
    첫번째 사진에서는 두 오리들의 자맥질이 남기는 물결들이
    손에 막 와 닿을 듯한 현실감을 느낌니다…마치 손에 잡힐듯이요..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겠지요….

    우연히 오규원 시인의 시를 검색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와본
    님의 오솔길 이제는 한 이방인의 숨겨진 오솔길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네요…….평화가 있고 따듯한 온기가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고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작은 영혼의 쉼터가
    되는 듯 합니다…………….감사합니다..

    1. 찾아주시니까 제가 고맙지요.
      오늘은 계룡산에 가서 사진찍다가 왔어요.
      좋은 풍경들이 많더군요.
      오래간만에 갑사도 둘러보고, 또 동학사도 둘러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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