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추억

Photo by Kim Dong Won
2021년 2월 20일 천호동 우리 집

딸이 김밥을 말았다.

김밥이 먹고 싶다며 새벽배송업체인 마켓컬리에서 김밥 재료를 주문하더니 정작 재료가 배송되어 온 다음 날엔 저녁 때까지 쿨쿨잤다. 토요일이 주는 달콤한 잠의 매력 앞에 김밥을 먹고 싶은 마음은 저녁 때까지 유보되었다. 저녁 가까이 되어서야 일어난 딸은 이것저것 재료를 준비한 끝에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사먹지 뭘 귀찮게 만들어 먹냐고 했더니 참치 김밥은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참치가 쉽게 쉬기 때문에 만들자 마자 먹었을 때 가장 맛이 있다는 것이다. 사먹으면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아서 시차 때문에 제 맛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밥하면 항상 신혼초에 있었던 그녀와의 일이 떠오른다. 그녀도 어느 날 김밥을 말았었다. 나중에 그녀는 생전 처음 말아본 김밥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서툴렀겠는가. 안에 들어간 김밥만큼이나 많은 밥알이 바깥에도 붙어 있었다. 그걸 지켜본 나는 그만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주 떡을 쳐라, 떡을 쳐.” 그 말이 서러웠던지 그녀는 김밥을 말다말고 펑펑 울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남자를 위해 음식을 한 경우는 생애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김밥을 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말고 있었다. 그러니 내 말이 서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뒤로는 음식에 대한 평은 거의 하지 않았다.

딸이 김밥을 다 한 뒤에 접시에 올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나는 김밥 장인이라 불러주시오.” 장인이란 말을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보기 좋게 말린 김밥이 접시 위에서 맵시를 자랑했다. 그 옛날의 그녀처럼 떡을 친 김밥이 아니었다. 옛날에도 비록 떡을 친 듯 보였지만 김밥은 맛있었다. 딸의 김밥은 맛에 더하여 모양도 수준급이었다. 그녀는 나를 먹이고 싶어 김밥을 말았지만 딸은 자신이 먹고 싶을 때 김밥을 만다.

Photo by Kim Dong Won
2021년 2월 20일 천호동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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