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난생처음 KTX를 탔었다. 멀리 부산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대전까지 타고 갔다 왔다.
언젠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다. 해외로 가는 비행기가 아니었다. 김해에서 김포로 오는 비행기였다. 친구의 결혼식이 부산에서 있었고 서울서 내려갔더니 올라갈 때 비행기타고 가라며 표를 끊어 주었다. 그때 처음 비행기라는 것을 타보았다.
속도와 속도감은 다르다. 비행기는 속도는 빨랐지만 속도감은 없었다. 속도의 느낌이 잘 감지되질 않았다는 뜻이다. 속도의 느낌이 가장 적나라하게 감지되기는 롤러코스터만한 것이 없다.
KTX의 속도감은 롤러코스터에 상응했다. 분명 서울역에서 열차에 올랐지만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열차가 벌써 대전에 도착하는 느낌이었다.
9시에 떠나 볼일을 보고 4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아직 대전역 어딘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슬렁거리고 있던 내가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와 나와 하나되려면 내일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안락하고 편안하게 그 속도에 적응해 있었다. 비행기는 처음 탔을 때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속도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KTX는 처음 탔을 때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1시간을 달렸다고 생각해보라. 누가 그에 적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모두가 잘 적응하고 있었다.
속도는 풍경을 뭉개면서 달린다. 달리면서 찍은 바깥 풍경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카메라는 속도가 어떻게 풍경을 뭉개는가를 보여주는데 있어선 놀랄만한 능력을 가졌다. 풍경을 뭉개면서 이렇게 잘살 수 있다니.
참고로 집에서 지하철 타고 서울역까지 가는데 1시간이 걸렸는데 서울역에서 대전까지 가는데도 1시간이었다.
KTX를 대전을 오고간다는 것은 내게 두 시간 동안 풍경을 뭉개는 일이었다. 빠른 속도를 얻는 대신 우리는 풍경을 뭉개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