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우리는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들의 기억은 대체로 자신을 중심으로 편재가 된다. 그건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서로를 다 아는 것 같지만 그러나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은 것이 또 부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각자가 하는 일을 하나둘 모두 기록하여 비교하면 서로의 일은 무게가 어지간히 균형이 맞을 것이란게 나의 생각이다. 그 균형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갈라서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나만 놀러다니고 그녀는 매일 사무실이나 집에서 일만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나보다.
그래서 지난 2004년의 일정을 모조리 뽑아보았다.

-2004년 2월 5일: 충남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그녀와 함께 간 여행)
-3월 12일: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그녀와 함께 간 여행)
-3월 15일: 전남 담양 대나무골, 소쇄원, 지리산 산수유 마을, 고창 선운사(그녀와 함께 간 여행)
-4월 7일: 전남 쌍계사(그녀와 함께 간 여행)

4월 중순경 카메라를 새로 장만했다. 이때부터 나의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4월 21일: 강원도 백담사(혼자간 여행)
-4월 23일: 경기도 두물머리(그녀와 함께 간 드라이브)
-5월 7일: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그녀와 함께 간 여행)
-5월 20일: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혼자간 여행)
-5월 21일: 경기도 양평 사나사(그녀와 함께 간 드라이브)
-5월 24일: 충남 태안 안흥바다(혼자간 여행)
-5월 27일: 강원도 정동진(그녀 혼자간 여행)
-6월 14일: 경기도 강화 석모도 어류정(혼자간 여행)
-7월 12일: 경기도 청평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그녀와 함께 간 드라이브)
-7월 14일: 영종도, 실미도, 용유도, 을왕리 해수욕장(그녀와 함께 간 드라이브)
-7월 15일: 강원도 속초(혼자간 여행)
-7월 19일: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혼자간 여행)
-8월 9일: 전북 군산 선유도(혼자간 여행)
-8월 10일: 충남 부여 궁남지(혼자간 여행)
-8월 11일: 전남 무안 백련지, 목포 유달산(혼자간 여행)
-8월 15~17일: 강원도 영월(그녀와 함께 보낸 여름휴가)
-8월 20일: 충북 충주호(혼자간 여행)
-8월 25일: 경기도 양수리 수종사(그녀와 함께 간 드라이브)
-10월 19~21일: 제주도(혼자간 업무 여행)
-11월 9일: 강원도 춘천(혼자간 여행)
-11월 10일: 강원도 주문진과 속초(그녀와 함께 간 여행)
-12월 17일: 전남 순천 순천만(혼자간 여행)
-12월 22일: 강원도 속초(그녀와 함께간 여행)

올해 들어와서도 나는 먼데는 혼자가고 가까운 데는 그녀와 같이 다녔다. 이상한 것은 1년전의 기억들인데 아득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마치 5, 6년전의 기억처럼. 왜 이렇게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밀리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에 갔었던 계룡산의 기억만큼이나 최근의 기억들이 아득한 옛시절의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왜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축적하는 추억의 양이 너무 많아 이제는 1년전의 기억도 손끝에 금방 잡히는 거리에 놓이질 못하는가 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그녀와의 여행 기억은 더욱 아득해졌다. 그녀의 불만은 사실은 내 기억 속에서 저만치 밀려난 그 우리의 여행에 대한 기억이 불만인 것은 아닐까.
그 불만의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그녀와 같이 갈 여행을 궁리해야 하는데 일만 끝나면 또 혼자 떠날 생각을 이리저리 더듬고 있다. 음, 월악산이나 오대산은 하루 일정으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겠군. 그렇게 행선지를 이곳저곳 알아보며 첫차의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혼자 떠나서 좋았는데 그녀도 혼자간 여행이 있었지만 나만같지 않았던가 보다. 또 이런 얘기하면 그녀는 너처럼 아이 걱정, 집안 걱정 깨끗이 잊고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팔자를 얘기하겠지. 하긴 나랑 같이 떠나도 마음의 절반은 아이와 집안에 두고 나랑 함께 다니니까. 내가 보기에 그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하루지만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길 위로 사라지는 날이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그 길로 사라지면 나는 일상에선 멀어지지만 그날 많은 것을 새롭게 보고, 또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카메라 들고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한번 다녀오지 그래. 새로 문을 연 용산의 국립박물관이라도. 그럼 그날 내가 집안 청소도 하고, 밥도 알아서 해먹을 테니(영 안되면 중국집에 전화하면 해결되겠지). 그게 아님, 잔소리나 좀 하지 말던지. 그냥 놀러 다니는 여행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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