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자 같았지만
사실은 저녁볕이 내려와 그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의자의 앞으론 유채꽃밭이 있었고,
유채꽃밭의 너머엔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유채꽃밭은 하루 종일 샛노란색을 고집했고,
보리밭은 바람이 불 때마다 진한 초록 물결을 고집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녁볕이 내려오면서
약간의 붉은 물감을 흩뿌렸죠.
하루 종일 노란색을 고집했던 유채꽃이 어쩐 일인지 그 고집을 꺾고,
아무 스스럼없이 그 붉은 기운에 물들었고,
그러자 보리밭도, 그 너머의 잔디밭도
모두 그 붉은 색채를 엷게 뒤집어 썼습니다.
아마 그 순간 누가 의자에 앉았다면
저녁볕은 분명 그 사람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겁니다.
그리고 무릎을 베고 누운 저녁볕을 내려다보며
유채꽃과 보리밭, 그리고 잔디밭의 뒤를 이어
분명히 그 저녁볕에 물들었을 겁니다.
저녁볕이 앉았다 가고나서 이틀 뒤,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이 그 의자에 앉았습니다.
남자는 의자에 앉고, 여자는 남자의 무릎을 베고 누웠죠.
분홍빛 신발을 신은 여자였습니다.
남자는 상의를 벗어 여자의 얼굴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냥 누워 있기엔 햇볕이 너무 따가왔으니까요.
남자는 가끔 옷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이틀전 그곳에서 저녁볕이 머물다 갔다는 사실을.
또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저녁볕이 유채꽃밭과 보리밭, 잔디밭의 노란색과 초록색 고집을 모두 꺾고
붉은 기운으로 세상을 모두 물들였다는 사실을.
이틀전 저녁볕이 앉았던 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여자는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물들었습니다.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누운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저녁볕이 되고,
앉은 사람은 그 저녁볕에 물드는 것.
그러면 유채꽃밭과 보리밭이 노란색과 초록색을 모두
사랑의 색으로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
이틀전 저녁볕이 앉았던 그 의자에
오늘은 한 남자가 앉고, 한 여자가 누워
서로 물들고 있습니다.
8 thoughts on “그 의자”
멋진 고향의 들녘같은 풍경이네요.
서울엔 참 없는게 없는 거 같아요.
카메라 둘러메고 나가보면 찍을 게 무궁무진한 느낌이예요.
첫번째 벤치 사진 무척 좋아요.
바라보기만해도 햇살의 따뜻함이 전해지고 핑크빛 기운이 감도네요.
어느 것 하나 스스로를 버리지 않고, ‘조화’된 무언가가 느껴져요.
낮엔 다들 선명한 제 색깔을 고집하는데 저녁에는 모두 저녁볕 속에 슬쩍 안기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볕이 더 따가워지기 전에 저 의자에 앉아 책이나 읽고 왔으면 좋겠다.
저 의자에 앉았다 오면 하루분의 사랑이 꽉 채워질 듯…^^
유채꽃밭과 유채꽃밭 사이의 의자야.
의자가 3개 있는데 그 중에서 첫번째 의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책읽기는 부적당한 곳이지.
사실은 저 사진찍을 때 사람들이 비길 엄청나게 오래 기다렸어.
내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기는 했는데 그냥 있더라.
사랑이 아름다운건 서로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이 그렇게 저항없이 받아 들여지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글 사진 잘 보았습니다.
두 연인에게서 좋은 포즈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카메라를 피하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28-300mm 렌즈 고쳐왔더니 아주 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