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과 숨바꼭질 하기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16일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가끔 저녁 때쯤
지는 해가 잠시 나무에 걸리는 곳을 골라
산책을 나가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저의 경우엔 팔당의 두물머리가 그런 곳이죠.
나무는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반짝반짝 빛이 새는
작은 이파리의 나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자리를 발견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햇님과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으~, 이기려 들지 말아요.
햇님은 항상 주먹밖에 모르니까
은근슬쩍 모른 척 가위를 내주세요.
아, 이거요, 햇님과 하는 숨바꼭질 놀이예요.
졌으니 당연히 술래는 우리고,
햇님은 우리가 열을 세는 동안 빨리 숨어야 합니다.
햇님이 나뭇가지 꼭대기에 걸렸을 때쯤
천천히, 마치 하나 세는데 5분은 족히 걸리듯이 열을 세기 시작합니다.
왜냐구요?
그야 햇님은 걸음걸이가 느리니까요.
그 정도는 봐줘야 하지 않겠어요.
한 다섯쯤 세다가 가늘게 실눈을 뜨고
곁눈질로 한번쯤 엿보도록 합니다.
햇님은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오분만에 찾아낼 수 있을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을 다 세고,
이미 봐두었던 나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봅니다.
앗, 분명히 봐두었는데 햇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친구이자 시인인 정정심은 그의 시 <추억> 속에서
어릴 적 우리들의 숨바꼭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죠.
“어쩌면 그렇게 이름자에 켜둔 불빛조차 남김 없이 지우는지”라구요.
한번 숨었다 하면 감쪽같았던 우리들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햇님도 어릴 적의 우리들 못지 않습니다.
흔적은 감쪽같이 지워져 있습니다.
몇군데 더 돌아보다 지치면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 주무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그날은 자면서 “못찾겠다 꾀꼬리” 잠꼬대좀 하게 되겠죠.
물론 다음 날 햇님은 동쪽 하늘에서 “나 여기 있다”하면서 얼굴을 내밉니다.
온 하룻밤이 다 걸리는 길고 긴 숨바꼭질입니다.
가끔 저녁 때쯤 나뭇가지가 햇님을 가려줄 적당한 곳을 골라
햇님과 숨바꼭질을 즐기는 것도 괜찮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16일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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