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팝나무

올봄 가장 눈여겨 보며 다닌 꽃이 조팝나무의 꽃이 아닌가 싶다.
그냥 시골로 나가면 논과 밭의 가장자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그동안은 이름도 챙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었다.
이 꽃이 기억에 새겨진 것은
어느 해 봄 팔당의 두물머리에 갔을 때였다.
그곳의 공원은 한쪽 귀퉁이를 온통 이 꽃으로 치장해놓고 있었다.
조팝나무 꽃은 하얗게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건 쉽지가 않았다.
올해는 가는 곳마다 이 꽃을 눈여겨 보며 다녔다.
무리지어 피어있으면 그냥 모두 뒤섞여 하얀 눈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하얀 설원의 대지에서 또 꽃이 떠오른다.
난 올해는 대체로 뭉뚱그려 하나로 보았던 그간의 눈을 버리고
시선을 그 작은 꽃 하나하나로 아주 가까이 가져갔다.
그래서 조팝나무 덤불을 만나면
한자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그렇게 조팝나무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름의 유래나 식물학적 지식으로 바라보던 그 꽃에서 놀이가 보였고,
그리고 결국은 꽃과 눈을 맞추기에 이르렀다.
난 조팝나무를 만나면
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을 찾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조팝나무의 꽃은 무리지어 있으면 영락없는 눈이다.
그 눈에선 상큼한 향기가 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1일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조를 튀겨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원래 얻은 이름은 조밥나무였으나
그 이름이 조팝나무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꽃잎이 조처럼 자잘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좀더 시선을 가까이 가져가면
우리는 조팝나무 속에서 또다른 모습을 만난다.
조팝나무의 꽃들은 그 하얀 세상에서
이렇게 하늘로 탑쌓기 놀이를 하며 놀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요건 페어로 짝을 맞추어 코너를 도는
피겨 스케이팅의 한 장면을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줄기는 가늘지만
꽃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꽃은 아무리 많아도 무겁지 않다.
예쁜 꽃은 더더욱 그러하다.
조팝나무의 꽃은 예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6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줄기는 때로 길이 되기도 한다.
꽃은 그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꽃이 줄기를 타고 올라가 오늘의 하늘이 어떤가 궁금해 하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석촌호수에서

조팝나무는 장미과에 속한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좀 의아하다.
아무래도 장미와 비슷한 점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그 꽃을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은 장미에 못지 않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4일 성남 금토동 청계산 산자락에서

이제 조팝나무의 꽃은
누군가의 가슴에 걸어주고 싶은 펜던트가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4일 성남 금토동 청계산 산자락에서

셋이 무리를 벗어나
가지끝에 자리를 잡았다.
이 정도면 한적하다.
내 시선이 그 셋을 오간다.
무리지어 있을 때
조팝나무의 꽃들은
내 눈 속으로 눈사태나듯 쏟아져 들어왔으나
셋이 호젓하게 있을 때는
나와 시선을 주고 받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6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하지만 난 결국 가지끝으로 나온 꽃들 가운데
어느 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나는 올해 그 수많은 조팝나무 꽃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꽃과 눈 맞았다.
하나와 눈을 맞추자
꽃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건너왔다.
내 마음은 꽃의 마음으로 건너갔다.

11 thoughts on “조팝나무

  1. 꽃을 좋아하는 평등공주입니다. ^^
    조팝나무 좋아하는데 여기서 또 보게되네요.
    동원님이 동원농장에서 담은 포도도 잘 보았습니다.
    과일 중 제일 좋아하는 포도사진보니 입안이 새콤해지는 듯합니다.
    동원님의 귀여운 글과 사진 잘보고갑니다.
    동원님 글터에 자주 올 것같네요. 귀찮아하지마셔요.^^

    1. 여기에 아마도 꽃사진은 많을 거예요.
      그리고 저야 들러주시면 영광이죠.

      포도 얘기는 아무래도 가을소리님 블로그 얘기 같아요.
      링크로 여행하셨다가 저라고 생각하신듯.

      아무 때나 생각나면 들러주세요.
      그때마다 반겨드릴께요.

  2. 핑백: mezzanin
  3. 조팝나무 비슷하게 생긴 꽃들이 수퍼마켓 가는 길 중간에 한가득 피어있는데, 내일 꼭 확인해봐야겠어요.
    조팝나무, 조팝나무… 이름이 왠지 끌립니다.^^

  4. 최근에 진주에 있는 ‘반성 수목원’을 갔어요.
    어느 한켠에 이 꽃이 한가득히 피어있었어요.
    ‘떡조팝나무’라고 적혀있고, 가득히 흘러내리는 하얀 꽃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한참을 서 있었어요.
    전 그 날 조팝꽃몽오리도 자세히 보면 별이 핀다는 걸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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