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차곡차곡 쌓여있는 계절의 지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계절이 수직으로 드러나는 단층면은 아니었다. 풍경은 여느 곳과 같이 옆으로 펼쳐져 있었지만 높이를 달리한 탓에 마치 수직으로 쌓인 지층처럼 보이곤 했다.
가장 아래쪽은 가을의 지층이다. 변색된 색의 갈대가 그 계절을 고집하고 있다. 상당히 두텁게 분포한다. 그 위로 봄의 지층이 자리한다. 벚꽃이 피면서 봄의 지층이 하얗게 드러난다. 며칠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드러난 봄의 지층은 얇게 띠를 형성하며 가을 지층 위를 길게 가로지른다. 봄의 지층 위에선 푸른 잎을 낸 나무들이 여름을 예고한다. 그 위로는 산이 윤곽을 겹친다. 산은 푸르러지고 있다. 하지만 산의 위쪽은 아직 겨울 분위기이다. 맨 위는 푸른 하늘이다. 하늘은 계절이 따로 없이 중립적이다.
하남의 한강변 풍경이다. 나는 벚꽃이 핀 날, 하얗게 드러난 봄의 지층을 따라 길고 오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