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 여자의 잔소리
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이다. 모두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한가지씩 한다. 그 점에서 세 여자는 한 가지 점을 공유하고 있다. 내게는 이 잔소리가 견디기가 어렵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머리 자르고 수염 깎으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단정한 용모를 선호한다. 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잔소리는 어머니 나이대 사람들에겐 거의 예외가 없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들어오는데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 나이대의 아주머니가 머리만 좀 자르면 훨씬 잘생겨 보이겠다고 잔소리를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잔소리를 해서 놀랐었다. 가끔 집에 놀러오는 친척 형도 보기만 하면 그 수염좀 깎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그 잔소리를 한번도 잊지 않는지 그 점이 놀라울 지경이다.
어머니를 상대로 긴머리와 방치한 수염이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설득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런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성장한 환경을 이해하면서도 잔소리를 감당하기는 힘든 것이 나의 현실이다. 다행이 요즘은 거의 안하신다.
그녀는 방청소를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방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녀와는 이 문제로 결혼했을 때부터 갈등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집에서 글을 썼고,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때는 남의 회사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회사라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때는 퇴근하고 와서 치우지 않은채 그대로 내 책상에 놓여 있는 점심 때의 밥그릇에 대해 잔소리를 했었다. 지금은 내 방에 옷장이 있어 옷을 갈아입으려고 방에 들어오면 냄새가 난다며 그 냄새 때문에 방에 들어올 수가 없을 정도라고 잔소리를 한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점심 때의 밥그릇을 치우지 않는 문제로 둘의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을 때, 나는 그녀에게 발견예술이라고 들어봤냐고 물었다. 나는 변기를 “샘물”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했던 뒤샹을 예로 들어주었다. 치우지 않은 밥그릇은 졸지에 집안에 설치된 발견예술작품이 되었다. 나는 심지어 그 치우지 않은 밥그릇에 제목까지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녀가 제목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알려준 작품 제목은 “기옥 손길을 기다리며”였다. 다행이 그녀가 양보를 하여 그 다음엔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내게 야, 이제 전시 다 끝났냐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의 일을 잊은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고, 내가 번번히 듣기 싫은 내색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화를 내는데도 잔소리 습관을 거두어 들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방청소 좀 하라는 요즘의 잔소리에 내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의 먼지나 냄새까지도 사랑할 수는 없냐고 말했었다.
나는 시를 읽고 시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다. 세상은 나를 문학평론가라고 부른다. 단순히 치우기 싫어서 그런다고 보기에는 내게는 먼지나 냄새에 관해 특별한 순간을 제공한 좋은 시의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내 작품들 속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가령 먼지에 대한 기억은 서상민의 시 「못」에서 만났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발바닥에 박힌 못을 회상하고 있는 시이다. 시인은 자신도 이해못한 것이 아버지의 삶이었지만 “빛 속으로 모여드는 먼지들은/빈방의 기울기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거처하던 방안으로 빛이 비치면서 그 빛속에서 부유하는 먼지들이 완연하게 눈에 띈 순간이다. 빛의 기울기라고 하지 않고 빈방의 기울기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빛 속의 먼지들은 기울어져 가면서 자신의 시대를 어렵고 힘들게 살아갔던 아버지를 이해했던 것이 분명하다. 동네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그 동네에서 자랐던 나의 유년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와 유사한 사례이다. 아버지 방의 먼지들은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을 들어온 빛은 곧 시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남긴 사진 한 장이나 물건이 곧 그 사람이 되곤 한다. 시인의 경우에는 다만 비스듬한 각도로 들어온 오후 다섯 시의 햇볕이 빈방에 유품처럼 남겨진 아버지가 되었을 뿐이다. 그 햇볕이 더욱 완연하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먼지 덕택이다. 그렇게 하여 햇볕이 아버지가 되자 발바닥의 통증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아버지의 아팠던 삶이 그래도 자식들을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어 빛날 수 있었던 삶으로 바뀐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 발바닥의 못이 아버지를 빠져나와 “긴 등뼈로” 아버지의 방에 빛이 되어 눕는다. 아픔없는 편안한 휴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읽는 시 속에선 먼지가 이렇게 빛난다. 먼지도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냄새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냄새에 관해선 차주일의 「냄새의 소유권」이란 아주 뛰어난 시가 있다. 시는 사람들이 모두 돈을 쫓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삶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이란 것을 냄새의 소유권으로 증명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상은 사람을 빈자와 부자로 나누려 들지만 시는 우리가 사는 곳을 냄새가 수건에 밸 수 있는 세상과 냄새마저 수건에 스밀 수 없는 세상으로 나눈다. 그리하여 “다섯의 얼굴 냄새를 발효하는 수건 한 장”을 가지고 있는 반지하방의 세상이 가난한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스밀 수 있는 세상이 되며, 사람들의 욕망이 몰려가고 있는 잘사는 세상이 알고 보면 같은 공간에 살아도 서로가 남남처럼 되버려 서로 스밀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시가 말하는 반지하방의 공간에선 사람들이 수건 한 장을 매개로 서로에게 냄새가 되어 스며든다. 방청소를 하여 냄새 좀 없애라는 그녀의 잔소리는 이런 시의 세상을 사는 사람에겐 잘 수긍이 되질 않는다.
딸은 과자를 먹고 빈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식탁에 그대로 버려둔다고 잔소리를 한다. 딸은 잔소리를 하며 과자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넣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라고 말한다. 내 입장에선 딸의 이런 얘기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이듬은 그의 시 「이상한 나라에서 온 앨리스」에서 독일에서 겪었던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곳에서 방을 얻을 때 “딸이 쓰던 아끼던 방을” 김이듬 시인에게 셋방으로 내준 “겔링 부인”이 “아시아 여자”이고 “단기 체류자”에다 “경제적 보증이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인이라서/시인이라서 셋방을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겔링 부인이 셋방을 주며 “집안에서 흡연은 절대 금지지만/시인이라서 시인이니까/부엌 쪽문을 열고 조금 피우는 건 이해할게요”라고 양해를 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를 존중”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겔링 부인의 태도는 시인에 대한 예의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시인에겐 자유의 호흡일 수 있다. 식탁 위에 내가 가끔 버리는 과자 껍데기도 공동 생활의 수칙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그러한 수칙들이 억압이 되는 세상에서 가끔 숨을 쉬기 위한 자유의 호흡으로 볼 수가 없나. 나는 더구나 시를 읽고 시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다. 겔링 부인의 태도에서 예의를 구한다면 딸은 내가 기록을 해보니까 아빠가 지난 한 달간 과자 껍데기를 그냥 식탁에 버려둔 것이 열 번이더라, 하지만 아빠가 글쓰는 사람이니까 내가 세 번 정도는 그냥 버리는 걸 허용할께 라고 말하는 것이 글쓰는 아버지와 같이 사는 딸의 예의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딸에 대해 서운함이 큰 것은 아이를 자유롭게 키웠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를 억압없이 키웠는데 다 자란 딸은 남의 자유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을 글 쓰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아버지의 자유를 오히려 공동 공간에서의 예의라는 주장을 내세워 억압하려 들고 있다. 자유롭게 키운다고 자유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크면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자유를 누리는데 있어선 아주 뛰어나지만 남의, 그것도 작가라는 예술가의 자유가 자신을 불편하게 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은 갖추어지질 않는다.
2. 글쓰는 자의 습성에 대하여
작가란 멸종위기종과 비슷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 종이 멸종위기종이 될 때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이 원인이 된다. 잔소리는 나를 멸종위기종으로 내몰 수 있는 스트레스가 되기에 충분하다. 무분별한 포획과 비슷하다는 얘기이다. 멸종위기종은 보호해야 하며, 그런 차원에서 잔소리를 멈춰야 한다.
멸종위기종이 될 수 있는 또다른 원인으로는 종의 독특한 습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가령 대나무 잎만 먹는 판다의 습성은 종의 번성에 매우 불리하다. 그렇다고 판다의 습성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용모가 좀 지저분하고 과자 껍데기를 식탁 위에 버리고 방청소를 잘 하지 않는 것은 판다의 습성과 비슷한 작가의 독특한 습성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습성에 일반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판다보고 대나무 잎만 먹으니까 먹이 대기 힘들다고 식성을 고치라고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아무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3. 나의 글쓰기 공간에 대하여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공간은 이 아파트로 이사올 때부터 내가 집필실로 이용해온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옷장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옷장을 이유로 들어 이 공간을 나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라고 공동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공간에서 2011년부터 글을 써왔다. 20년 넘게 나는 하루 24시간을 거의 이곳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거의 철저하게 나의 공간이고 옷장이 내 공간에 끼어들어와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집의 어느 누구도 내가 내 방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자신의 공간에서 지내는 경우는 없다. 다들 출근하여 낮의 시간에는 그 공간을 비워둘 때가 많다. 옷장을 내세워 방청소를 주장하는 것은 나의 집필보다 옷장이 더 우위에 있는 듯한 모멸감을 준다. 그 때문에 방청소를 하라고 할 때마다 자꾸만 옷장에 적의를 느끼게 된다.
작가의 집필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판다의 대나무숲과 같은 특별한 서식지로 보아야 한다. 당연히 그 공간을 배타적으로 인정해주고 보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4. 공간의 부족
집안의 공간 부족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거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공간이 그녀의 옷장과 분리됨으로써 그녀가 불편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공간이 옷장과 함께 있게 되면 불편이 해소될까 싶어서 내가 거실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딸이 그러면 거실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고 나왔다. 그곳이 공용 공간이란 논리였다. 그러면 나에겐 나만의 집필 공간은 이제 없어지는 것인가. 왜 판다를 대나무숲에서 쫓아내는데서 끝나질 않고 판다에게 대나무 같은 것 먹지 말고 다른 깨끗한 동물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인가.
나는 우리 집이 방이 세 개 있지만 공간 부족 사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공간이 부족하질 않았다. 딸이 오랫동안 유학을 나가 있어 한 사람의 공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딸이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그녀가 쓰던 공간은 딸의 차지가 되었고, 그녀는 모두의 공간이었던 거실로 자신의 공간을 옮겼다. 그리고 옷장은 내 방의 옷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의 공간과 내 공간이 겹치게 되었다. 자신의 공간을 갖고 자신의 옷을 그 공간에서 꺼내고 입을 수 있으면 내 공간으로 드나드는 일이 줄어들고 그러면 불편도 준다. 그런데 공간 부족으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갈등의 상당 부분이 공간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집을 하나씩 사서 각자 개별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경제적 상황 때문에 그러질 못한다. 딸은 이런 문제를 공동 공간에서의 예의라는 주장을 내세워 해결하려고 한다. 내게선 공간의 부족 문제를 내 개인의 습성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주장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의 부족에서 찾지 않고 장애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는 것과 다를바 없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보아야 하는데 구조적 문제를 내 개인탓을 하는 것이 아주 기분이 나쁘다.
내가 글쓰는 자의 습성을 이해하고 예술가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감당해줄 수 없냐고 말했지만 글은 글이고 방은 치워야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이야 말로 글에 대한 몰이해의 전형이다. 글이 쓰여지는 방과 글은 분리될 수 없다. 공간도 부족하지만 글쓰는 자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5. 이해받지 못한 글쓰는 자의 슬픔
글쓰는 일은 힘든 일이다. 누군가 전폭적으로 도와줘도 힘이 든다. 글 자체가 쉽게 쓰여지질 않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 시간에 비례해서 씌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글이 안써질 때는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안된다. 글 자체도 이렇게 힘든데 세상의 몰이해는 글쓰기를 더욱 힘들게 한다.
한때 그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글쓰는 나를 이해하는 여자였다. 나는 그 딱 한 사람의 이해를 힘으로 삼아 글을 쓸 수 있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는 나를 이해해주고 있으나 그녀는 나에 대한 이해로부터 멀어졌다. 돈을 벌며 생활에 힘든 탓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있어도 때로 나에 대한 이해로부터 멀어진 한 사람이 나를 더 힘겹게 한다.
나는 결혼하면서 자유를 잃어버렸으나 그 자유를 그다지 멀리 잃어버렸다고는 생각지 않고 살아왔다. 딸이 자유롭게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잃어버렸지만 그 잃어버린 자유가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유로부터 내 자유의 억압을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실망감이 크고 슬프다. 또 화도 난다.
글쓰는 자는 이런 글을 쓸 때가 가장 슬프다. 글쓰는 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쓸 필요도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할 시간에 이해받지 못한 글쓰는 자의 슬픔이 글이 되었다. 슬픈 일이다. 다행이 봄이라 봄꽃들이 요즘 그 슬픔을 좀 달래주고 있다. 오늘도 나가서 슬픔을 달래고 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