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월곶포구를 걷다 아파트와 배, 갈매기를 보았다. 아파트는 지상에 붙박혀 움직이지 못한다. 배는 지금 뻘에 발목이 잡혀 있다. 둘 모두 꼼작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갈매기는 다르다. 비록 지상에 서 있지만 언제든 날 수 있다.
꼼짝하지 않고선 살 수가 없다. 아파트는 그곳에 사는 우리들을 내보내 세상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으로 움직인다. 아파트는 그래서 우리들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우리들은 세상을 묻혀 돌아와 세상사는 푸념으로 집안에 털어놓으며 쉬는 것으로 아파트에 세상을 채운다. 아파트는 걱정이 없다. 그곳에 사는 우리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다 돌아오면 마음껏 돌아다닌 우리의 세상이 집안에 채워지기 때문이다.
배도 걱정이 없다. 지금은 발이 묶여 있지만 바다가 배를 뻘에서 꺼내주러 오기 때문이다. 바다는 물을 밀고 들어와 배의 밑에 바다를 채운다. 그러면 배는 다시 몸을 움직여 바다를 돌아다닐 수 있다.
아파트나 배가 우리와 바다를 기다리는 것과 달리 결핍이 없는 갈매기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결핍한 자의 기다림은 채워지고 비워지는 순간을 통해 우리의 삶을 관계 속에 숙성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의미를 깊게 해줄 때가 많다. 결핍이 우리를 깊게 한다. 결핍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갈매기는 한동안 지상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기다림이 부러워 흉내라도 내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