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밝힌 아침 – 2022년 이소선합창단 모꼬지

Photo by Kim Dong Won
2022년 이소선합창단 모꼬지 기념
2022년 7월 2일 경기도 양주 장흥면의 천생연분마을 마을회관

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7월 2일 토요일, 1박의 일정으로 모꼬지 시간을 가졌다. 장소는 경기도 양주의 장흥면에 있는 천생연분마을의 마을회관이었다.
가장 감동적인 환영은 자연이 전면에 나서는 환영이다. 며칠의 폭우가 쓸고 간 뒤끝에서 하늘을 가득 채운 흰구름이 합창단을 맞아주었다. 마을을 흐르는 시냇물은 불어난 몸집으로 물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그 소리는 합창단을 맞는 반가움이었다.
대부분의 모꼬지는 먹고 마시는 시간으로 채워지지만 이소선합창단의 모꼬지는 많이 다르다. 합창단의 모꼬지는 노래로 채워진다. 합창단은 노래에 마침표가 찍히면 이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는양,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물론 마침표는 허용치 않지만 잠깐씩 노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쉼표의 개입까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합창단은 저녁을 먹으며 노래를 위한 숨고르기를 했다. 아직 날은 훤했다. 그 다음에는 5월에 있었던 합창단의 정기공연 영상을 모두가 함께 보았다. 공연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연에 환호했고, 공연의 마지막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자 모두 주먹을 불끈쥐고 다시 또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잠깐의 오락시간이 개입했다. 어떤 단원은 말없이 단어를 설명해야 하는 오락의 규칙 때문에 바닥에 누워 매트리스가 되어야 했지만 매트리스가 된 그를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락 시간의 뒤는 드디어, 또는 이윽고나 마침내, 노래의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와 새롭게 합창단에 합류한 단원이 노래의 물꼬를 텄다. 합창단이 외친 앵콜에 그는 노래 한 곡을 더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노래 중에는 <대결>이 있었다. 노래는 “랄랄랄라 랄랄라 힘찬 투쟁 랄랄랄라 랄랄라 민주노조 만만세”로 시작된다. 이소선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는 모두 이런 류이다. 노래의 중간에 지휘자 임정현의 생일을 축하하여 케이크를 내오는 깜짝 행사가 끼어들었다. 합창단은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모두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불렀지만 이 노래가 생일 축하 노래로 적당한 것인지에 대해선 모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노래가 대부분 투쟁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노래이고 투쟁이란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쓰러지는 단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노래는 아직 쓰러지지 않은 자의 몫이 된다. 쓰러진 자가 다시 일어나 노래에 합류하기도 한다. 쓰러졌다 일어나면 좀비가 되는 법이나 노래를 환기하며 몸을 일으킨 자들은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마저도 물리친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바깥을 보니 어디나 어둠이다. 밤이 오면 그 밤을 채우는 것은 어둠이다. 그러나 때로 그렇지 않다. 그 밤을 이소선합창단은 노래로 채운다.
잠시 마을회관을 나왔을 때 농밀한 어둠이 빛을 봉쇄한 그곳에서 합창단이 노래하고 있는 마을회관만이 불빛이 환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노래로 밝힌 빛이란 것을. 다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면 불의 스위치를 내려보고 싶었다. 노래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그곳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때로 어떤 일은 그냥 내 마음 속에만 담아두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한 단원이 거의 스님의 염불을 연상하게 만드는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들은 단원들은 모두 입에 웃음을 거품처럼 물고 추풍에 지는 낙엽처럼 쓰러졌다. 단원들은 때로 필요하면 파도가 되었다. 파도가 되는 일은 지극히 간단했다. 두 팔을 위로 들고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면 되었다. 넘실대는 파도가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일렁였다. 노래는 우리를 웃음으로 쓰러뜨리기도 하고 우리를 파도로 만들기도 했다.
노래는 가끔 투쟁의 노래에서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일반 노래로 외출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령 <고래사냥>을 불렀을 때, 노래는 우리 모두 동해로 떠나자고 했지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창가로 동해의 푸른 파도가 몰려와 넘실대고 있었다. 나는 소리칠뻔 했다. 다들 봐, 동해가 창가로 몰려왔어! 하지만 나는 소리치지 않았다. 노래를 방해 않는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
노래 부르다 쓰러지고, 그러면 남은 자들을 모아 다시 또 노래를 부르는 그 밤이 새벽 다섯 시를 넘겼을 즈음, 마을회관의 창에 아침이 뿌연 눈을 비비며 찾아와 있었다. 아직 아침이라기엔 새벽이 더 어울리는 조도를 갖고 있었지만 그 새벽은 조용히 마을회관 앞에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깥에 나가 보았다. 산위로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내가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아침이었다. 그것은 노래로 밝힌 아침이었다.
이제 아침이 밝았으니 되었다며 노래를 부르던 자들은 모두 그제서야 노래를 내려놓고 쓰러졌다. 여기저기 쓰러진 자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노래로 밝힌 그 아침이 아까워 나는 일찍 회관을 나와 아침을 걸었다. 해가 산위로 한뼘 정도 올라와 있었다. 세상은 조용했지만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노래가 밝힌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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