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꽃몽오리였습니다.
다들 그렇게 불렀죠.
꽃의 이름은 모르겠고, 눈에 띌 정도로 다소 길었어요.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이었죠.
그러다 잎이 벌어지면서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속이 들여다 보입니다.
들여다보니 수술같이 보이는 것들이
머리를 길게 빼고 몰려나와 있었습니다.
항상 나에게 그 꽃은 처음엔 꽃몽오리를 잡고 꽃잎을 가지런히 모아두었다가
그 다음엔 꽃잎을 펴서 꽃을 피웠습니다.
사실 세상 꽃들이 다 그렇습니다.
꽃들은 제각각의 화려함을 자랑하는데
꽃몽오리를 잡고 이어 꽃을 피우는 것은 모두 똑같습니다.
똑같으면 좀 무료해 집니다.
그 무료함이 싫어서 이제 막 꽃잎을 연 그 꽃을 들여다볼 때
유난히 깊은 그 꽃의 속을 터널이라고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것은 막힌 터널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쪽이 어느 쪽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보통 터널은 어디나 진한 어둠밖에 보이질 않아 앞을 짐작하기 어려운데
그 꽃의 터널은 앞쪽으로 붉은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으니까요.
수술이 한 걸음을 내디디면 그 붉은 빛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꽃대에서 처음 걸음을 떼었을 때만 해도
금방 그 터널을 열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래서 터널을 밀고 가는 팔과 다리에도 힘이 솟았구요.
하지만 터널은 쉽게 열리질 않았어요.
점점 더 터널을 밀고 가는 팔과 다리에 힘이 빠졌죠.
힘이 빠지자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한 그 터널도 캄캄하기만 했어요.
걸음을 접을까 싶어 뒤를 돌아보면
처음 걸음을 뗀 터널의 입구는 저 만치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온힘을 다해 다시 터널을 앞으로 밀었습니다.
그 순간 꽃의 터널이 세상을 향해 열렸습니다.
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죠.
터널은 어느 집의 2층 베란다에서 골목길이 내려다보이는
목좋은 곳으로 뚫려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터널 끝에서 골목길을 내려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이제는 ‘어, 저 아인 오늘 새옷을 입었네’ 하는 재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택배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오늘은 무엇을 가져오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꽃으로 피었을 때는 내가 세상의 구경거리였는데
꽃의 터널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더니
세상이 나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2 thoughts on “꽃의 터널”
어쩐지 쟤는 골목을 향해 고개를 쭉~ 빼놓고 있더라.
꽃터널은 벌과 나비가 오가는거야?
하긴 통행료도 내는 것 같더라. 쟤들의 통행료는 꽃가루…ㅎㅎ
벌하고 나비는 못봤는데
오늘 좌우지간 웬 벌레 하나가 들어가 있더라.
왕복터널이잖아.
통과하는게 아니라 들어갔다 나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