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과 벌레 구멍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5월 15일 우리집 마당에서 찍은 배나무잎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었습니다.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바로 옆의 나뭇잎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쨌다구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벌레 구멍을 본 게 어디 한두 번 인가요.
하긴 그렇긴 하지요.
사실 신기할 것도, 재미날 것도 없습니다.
근데 그 흔한 벌레 구멍 하나가 재미나면 세상이 정말 즐겁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심심하고 따분한게 싫은 나는 그 벌레구멍을 하나의 이야기로 변주해 보기 시작합니다.

나뭇잎 하나가 있었습니다.
녹색이 고르게 입혀진 아주 매끈한 나뭇잎이었습니다.
나뭇잎은 어느 날 그 잎에 창을 하나 내고 싶었습니다.
초록 일색의 그 맵시가 싫진 않았지만
마치 창하나 없는 집같기도 하여 좀 답답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벌레 목공을 불렀습니다.
알아서 창을 하나 내달라고 했죠.
벌레 목공은 적당한 자리를 골라 둥근 창을 하나 내주고 돌아갔습니다.
창으로 내다보니 이웃의 이파리가 실핏줄을 그대로 드러낸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벌레 목공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날 품삯을 받으러간 벌레 목공은 사약을 받아야 했답니다.
나뭇잎이 정원사를 시켜 사약을 내렸다는 군요.
그 사약은 농약의 일종이었다고 합니다.
말은 안했지만 나뭇잎은 하늘로 창을 내길 바랐는데
이웃의 나뭇잎이 눈앞을 가린 벌레 목공의 창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벌레 목공은 창 한번 잘못내고 세상과 하직해야 했습니다.
벌레 목공 여러분, 조심하세요.
나뭇잎에 창 한번 잘못내면 그것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오늘도 여전히 벌레 목공들은
제 목숨이 걸린 줄도 모르고
나뭇잎의 여기저기에 창을 내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5월 15일 우리집 마당에서 찍은 배나무잎

7 thoughts on “나뭇잎과 벌레 구멍

  1. 바뻐서 꼼짝 못하니까 집안에서 온갖 글의 소재거리가 나오는구나.^^

    벌레 나왔다고 베개들고 자기 방 뛰쳐나와 엄마한테로 달려오는 우리 딸도 있는 걸~

  2. 제가 어른이 읽는 동화를 즐겨 읽거든요.
    좋아요, 그런 동화책 같애요.
    사진으로 찍어두니깐 벌레 먹은 구멍도 귀엽고 그러네요.
    이런 거 일일이 찾아보고, 사진 찍고, 이야기 지어내는 동원님도 새삼 놀라와요.

    1. 동원님의 탁월한 개인기이신대요.
      평범한 일상을 말씀하시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으세요.

      전 요즘 작은벌레(무당벌레, 거미, 개미, 콩벌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가끔 마당의 요녀석들 이야기도 들려주시기를요~ ^ ^

    2. 벌레들도 아주 재미나죠.
      그 왜 개미로 책 한권 쓴 사람도 있잖아요.
      벌레 얘기하니까 오규원 시인이 쓴 <송충이>가 생각나네요.
      다시 찾아서 읽어봤더니 그 시에 요런 부분이 있어요.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송충이는
      모두 저렇게 아름답다
      줄기 위의 하늘에서 잎 위의
      하늘로 옮아가는 몸놀림은
      낮은 강물 소리 같다
      보송하게 살이 잘 오른
      가슴이며 아랫도리는 르느아르의
      화풍이다 보라
      보드라운 솜털은
      대낮에도 별빛을 옭아맨다

      르느아르의 그림에 나오는 오동통하게 살오른 여인네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얘기 같아요.
      근데 전 벌레는 아주 싫어해요.
      개나 소도 별로 안좋아하구요.
      주로 꽃하고 나무를 좋아하죠.

    3. 송충이를 위한 이렇게 멋진(!) 시도 있네요.
      개나 소는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꽃과 나무는 좋아선 자꾸만 다가가요.
      벌레는 그저 그런데, 그 중에 바퀴 달린 벌레는 아주 싫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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