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해고노동자들이 마련한 세종호텔 투쟁문화제의 자리에 함께 했다. 세종호텔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해고 철회와 해고자의 복직을 외치는 자리였다. 집회의 음향 시설이 부족하여 일부 음향 설비는 합창단에서 직접 준비해 갖고 가서 설치했다.
합창단은 모두 네 곡의 노래를 불러 노동자들의 주장에 노래로 마음의 연대를 표했다. 첫곡은 <진군의 노래>였다. 노래는 “깨지고 짖밟혀도 우린 노동자”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노래는 음으로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며 합창은 그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모아 빚어낸다. 합창으로 빚어낸 노래의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를 물들인다. 노래에 물들면 듣는 이도 노래의 아름다움이 된다. 때로 노래는 그렇게 아름다운 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를 노래로 물들여 그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이소선합창단이 세종호텔 앞에서 집회를 여는 해고노동자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를 때가 바로 그렇다. 노래는 그들을 노래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여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증명하려 든다. 노래는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내일을 열어갈 우리 노동자”라고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노래로는 <천리길>과 <우리라는 꿈>이 이어졌다. <천리길>을 열어가는 것은 “내 땅의 나”이다. 아마도 자본이 부당하게 집어삼킨 땅을 노동자들이 다시 찾게 되는 날 열리게 될 그 땅을 노래로 미리 가보는 길일 것이다. <우리라는 꿈>을 부를 때의 이 땅은 “저 바람도 견디고 있”고 “저 햇빛도 견디고 있”는 곳이 되고 만다. 그러나 노래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서로 맞잡아 힘이 되는 연대”를 꿈꾸고 “서로 맞잡아 꿈이 되는 노래”를 우리의 손에서 놓지 않는다. 노래는 그런 우리는 “패배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때로 승리에 대한 다짐이 힘이 된다.
이소선합창단은 합창단의 사회를 본 김우진 단원의 입을 빌어 이 싸움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고, 빠른 시일내의 해결도 보장할 수 없지만, 이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세종호텔의 해고노동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것 하나만큼은 약속했다. 그 약속은 매달 두 번째 주 집회 때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약속이기도 했다. 그 약속의 의지를 담아 합창단이 부른 마지막 노래는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였다. 노래의 말미 10초 동안에는 사실 시간에 늦어 급한 걸음으로 집회 장소로 달려왔던 단원 한 명의 목소리가 그 합창에 더해졌다. 굳게 진 주먹 또한 하나 더 늘었음은 물론이다.
독특한 집회였다. 한 노동자가 나와 신용목의 시를 읽고 자신의 느낌을 말한 부분이 그랬다. 노동자는 신용목의 시 <눈사람>을 읽고는 눈사람이 녹아 사라져도 녹아있는 물이 눈사람을 만들던 순간의 기억을 환기시키듯이 명동에서 시위를 하는 이 시간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명동을 걸을 때마다 이 거리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운 그 시간들을 환기시킬 것이라고 했다. 시기는 아직 무더위가 여전한 8월이었지만 노동자의 그 얘기가 맞다며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농성 노동자들은 농성장의 한켠에서 나팔꽃을 키우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 나팔꽃이 꽃을 피웠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키우고 있으니 당연히 노동자들을 지지할 것이다. 나팔꽃과도 손을 잡고 연대의 경계를 넓힌 농성은 처음보았다.
집회의 마지막도 아주 독특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호명했기 때문이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집회를 주최하는 노동자 중의 한 분이 이름을 물었는데 왜 이름을 물었는지 의문이 풀린 순간이기도 했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듯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참가자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노동자는 진화하고 있다. 노래로 노동자들의 싸움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고 시를 읽어 노동자의 싸움을 그곳을 지날 때마마 환기할 기억으로 거리에 새기며 이름을 모두 호명하며 우리를 집회의 마지막에 하나로 묶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어가는 진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자본가들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인간을 버리고 퇴화할 때, 노동자는 인간의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