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견디는 슬픔의 시간 — 이영주의 시 「빙하의 맛」

시인 이영주는 그의 시 「빙하의 맛」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슬픔처럼 얼음에 끼어 있다.
—「빙하의 맛」 부분

나는 이 구절을 슬픔은 얼음에 끼어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로 받아들였다. 만약 그렇다면 슬픔은 얼음이 녹듯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슬픔이 도저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해도 얼음이 녹을 때쯤 슬픔도 사라진다. 그러니 얼음이 녹을 때를 기다리면 된다. 계절로 보면 봄이 왔을 때 얼음이 녹는다. 봄이 되면 슬픔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시는 그 기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몇 세기 만에 돌아온 노인이 얼음을 깨고 있다. 너는 봄이 와도 왜 녹지를 않지? 노인은 나를 보고 고개를 젖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으면 슬픔도 사라지지만 문제는 봄이 와도 얼음이 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절에 관계없이 슬픔을 벗어나긴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시인은 시의 말미에서 “슬픔에 끼어 있다. 빙하의 맛이 난다”고 말한다. 얼음에 끼이면 춥다. 슬픔에 끼이면 우울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한번도 춥다고 하지 않는다. 춥다는 느낌으로 떨고 있는 대신 시인은 빙하의 맛을 보고 있다. 슬픔에 끼었을 때 그나마 우리가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얼음에 끼었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얼음을 녹여 얼음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얼음이 잘 녹지를 않기 때문이다. 다행이 또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얼음의 맛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떨게 만드는 얼음의 냉기는 더 이상 없다. 음미할 맛만 남을 뿐이다. 시인의 방법이다. 그리고 맛을 볼 때 혀끝에서 얼음이 조금씩 녹을 것이다.
(2021년 8월 22일)
(인용한 시는 이영주 시집,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아시아, 2020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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