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8월 31일 수요일, 양재동의 SPC 빌딩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SPC 그룹의 부당 노동행위와 합의 불이행에 항의하는 제빵 노동자들의 시위였다. 시위 참여자들의 손에 들린 종이 팻말에선 “SPC 파리바게뜨는 모성권을 보장하라”는 문구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모성권은 여성이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하여 가져야할 기본적 권리이다. 임신 시기의 노동시간 단축이나 육아 휴가와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합창단 매니저 이장주는 내내 무대 옆에서 그 문구가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 팻말은 노동자의 구호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피아니스트의 눈을 찌르는 조명을 막아주고 있었다. 덕분에 피아니스트는 눈을 방해하는 조명을 피해 무사히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모성권은 심지어 피아노 연주도 보장한다.
이소선합창단은 두 곡의 노래를 불러 노동자의 시위에 연대의 마음을 표했다. 첫곡은 <천리길>이었다. 노래를 시작하는 가사는 “동산에 아침 햇살 구름 뚫고 솟아 와”이지만 그 가사의 전에 범범범범이라는 추임새 비슷한 구절이 먼저 앞을 선다. 나는 언젠가 그 범범범범의 정체를 합창단 지휘자 임정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범이란 말이 울림이 커서 그 말로 울림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노래는 천리길을 가는 걸음이 단순히 걸음만 내딛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준다.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시민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시위에 지지의 마음을 보태며 합창단이 노래로 함께 할 때 그 울림이 만들어지고 그 울림은 천리길도 달려갈 수 있는 걸음이 된다. 나는 노래를 들은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 합창단이 만들어내는 울림을 들었다.
합창단의 두 번째 곡은 <해방을 향한 진군>이었다. 노래는 인간의 권리를 찾기 위해 총파업 전선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 노래에서 가장 가슴을 파고 드는 부분은 아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라는 소리로 앞을 치고 나오는 소프라노의 음이다. 이 부분을 들을 때면 바람에 일어서는 풀이 아니라 바람 자체가 되어버린 풀을 느끼게 된다. 풀이 바람이 되면 풀들은 일어나 모두 노래가 된다. 노래가 된 풀들은 노래의 마지막에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을 외쳤다.
문화제가 모두 마감되었을 때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여름을 보내고 나자 날이 완연하게 일찍 저문다. 그러나 때로 어두워도 세상이 밝다. 노동자가 모성권을 보장하라 외치며 그것이 인간의 기본 권리임을 일깨우고, 시민이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주먹을 불끈 쥐고 그 구호를 함께 외치며, 합창단이 노래에 연대의 마음을 실을 때 세상은 어두워도 밝다. 돈에 눈이 멀어 인간을 잃어버린 자본가들의 세상은 어둠이었으나 그 어둠 속에서도 세상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