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약속과 만남

Photo by Kim Dong Won
2020년 9월 27일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창동의 그녀가 전화를 했다. 전화를 건 그녀가 물었다. 이번 주에 우리 어떻게 하지? 이번 주엔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일요일날 얼굴을 보기로 했었다. 양수역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었다.
일요일의 약속은 두 번째 미루어진 약속이었다. 처음에는 9월 5일날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닷새를 앞두고 코로나 확진자가 세 자리 수로 늘어나면서 약속은 9월 27일로 밀려났다. 그 약속도 보장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자릿 수로 내려앉았던 확진자는 다시 27일을 앞두고 세 자릿수로 늘어났다.
확진자가 줄어들긴 힘들 거 같아. 네 생각은 어때? 내가 되물었다. 나도 고민이야. 만나서 술집가거나 카페 들어가는 것도 힘들 것 같고. 그게 좀 그렇기는 해. 술도 안마시면서 만나기도 좀 그렇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시월에는 다시 두 자릿 수로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힘들 거 같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게 세 자릿 수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어. 두 자릿 수가 되면 좀 안심이 되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우리는 만나려고 약속을 한 뒤에는 바이러스 확진자 숫자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세 자릿 수의 확진자수는 만나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가끔 사진을 찍어주면서 관여하고 있는 이소선합창단에선 아예 방호복을 입고 연습에 참가하는 단원도 있었다. 병원의 의사였다.
그녀가 확진자 숫자에 예민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을지로4가에 있는 21세기 한의원에서 일했다.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한의원이다 보니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 했다. 그에 반하면 프리랜서인 나는 팬데믹이 오기 전에도 이미 격리 상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게는 이런 상황의 삶이 그 전부터 익숙했다. 나는 거의 집밖을 나가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매일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봐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한의원의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이 오는 것도 불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태극기집회에 다녀온 듯한 어르신들이 있는 듯한데 물어보면 안갔다고 딱 잡아떼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요즘 어르신들 가운데서 핸드폰에 커다랗게 태극기를 붙이고 있는 분들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나는 내가 너를 감염시킬까봐 그게 무서워.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요즘 나온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홍보 문구 중에 서로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혼자가 되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지금은 정말 그런 시절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하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보고 싶은 마음을 계속 눌러두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추이를 지켜보다가 그 주에 확진자가 두 번 정도 두 자릿 수로 나오면 그 주의 주말에 보는 건 어떨까? 나는 그녀의 제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수정하여 그러면 이번 주는 금토에 두 자릿 수가 되면 일요일날 그대로 보고 세 자릿 수가 되면 다음으로 미루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못보면 어느 주이든 목금에 두 자릿 수가 되면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보기로 하자. 물론 하루 전에 연락해서 서로 확인하기로 하고.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녀가 좋아, 좋아라고 했다. 그리고는 10월 24일은 빼자는 말을 추가했다. 그날은 일을 나가야 하는 토요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여 약속은 다시 정해졌다. 조금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 시대의 약속은 코로나 확진자가 결정을 했다.
9월 25일 금요일이 되었을 때, 발표된 확진자는 114명이었다. 이 번주는 만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9월 26일 토요일의 확진자는 61명으로 크게 줄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는 114명이었는데 오늘은 61명이래. 우리 평균내서 세 자릿수 이하라고 생각하고 내일볼까? 그녀가 말했다. 아주 만나고 싶어서 생각을 짜내는 구나. 그런데 내일은 안돼.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스피린 먹고 있거든. 요즘은 감기가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헷갈리는 시절이라서 감기 기운있는데 만나는 건 너무 위험해. 일단 추석 연휴 지나고 10일날 보는 것으로 하자. 물론 확진자가 두 자릿 수로 줄어야 하긴 하지만. 나는 곧바로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내일 양수역으로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물었다. 나도 없는데? 나는 그냥 혼자 양수역으로 나가서 돌아다니다 올 생각이라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 같다. 그럼 내일 하루는 나의 약속이 되는 거네. 그녀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없겠지만 나는 그녀의 약속으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일요일날 오전에 집을 나섰다. 11시였다. 버스타러 가는 골목을 걸어가다 어느 집의 감나무를 보았다. 감이 익어 색깔이 붉은 색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잎은 초록이었다. 무성한 초록의 잎들 사이에서 감의 색깔이 완연하게 구별이 되었다. 초록잎들이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손을 저어도 가을은 정확하게 감들만 짚어내며 그 자리로 와 있었다. 이제 곧 잎들도 가을에게 색을 달라고 손을 내밀 것이다.
집들의 그림자가 골목을 절반 정도 덮고 있었다. 아직은 오전이라 그림자는 모두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들의 윤곽을 따라 그림자는 들쭉날쭉했다.
우성아파트 앞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30번이 오길 기대했으나 가장 먼저 온 것은 13번이었다. 30번을 타면 하남의 신안아파트 후문에서 112-1번으로 갈아탈 수 있다. 그게 가장 편하다. 13번을 탔을 때는 상일초등학교 정류장에서 112-1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면 옛길로 하남을 통과해야 해서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상일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의 지붕이 내린 그림자가 길게 밀려가 차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햇볕 속에 그대로 서 있는 것도 괜찮았다. 햇볕은 이제 따뜻했다.
하팔당 마을에서 112-1번 버스를 내렸다. 팔당역까지 걸어갔다. 전광판의 안내 문구는 내가 타고 가야할 열차가 네 정거장 전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빠른 속도를 뽐내는 열차가 역을 급하게 지나 동쪽으로 달려갔고, 잠시 뒤 약간 느린 속도의 열차가 다시 또 역을 그냥 통과했다.
양수역에서 내린 뒤 역바로 아래쪽에 있는 자전거길을 따라 양수리 거리 쪽으로 걸었다. 곧장 두물머리 강변으로 가지 않고 양수리 거리 쪽으로 향한 것은 나온 김에 커피 한 봉지를 사기 위해 서였다. 양수리 거리에는 우리 집에서 즐겨 먹는 클라라 커피가 있었다.
자전거길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행로가 함께 붙어 있었다. 걷는 사람은 드물었고 자전거는 자주 지나갔다. 잠깐씩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구름이 좋았기 때문이다. 구름은 날 좋은 날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모두 놀러가자며 푸른 하늘로 몰려나온다. 구름이 조장한 소풍날 분위기가 완연한 날이었다. 불행히도 클라라 커피는 문이 닫혀 있었다. 클라라 커피는 그녀의 약속이 되질 못했다.
클라라 커피의 아래쪽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양수대교 쪽 강변으로 나갔다. 양수대교 다리 위로 구름이 집단 비행을 하고 있었다. 어떤 축하 비행 같아 보였다. 블랙이글의 축하 비행처럼 요란하지는 않았다.
강변을 따라 걷고, 다리를 지나치자 칸나로 가꾸어진 꽃길이 나왔다. 칸나는 붉은 불꽃을 연상하기에 좋은 꽃이다. 자세를 낮추어 칸나의 불꽃을 하늘의 구름에 맞추었다. 구름에 불이 붙었다. 하늘이 온통 붉은 홍염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저녁 때쯤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구름은 내연제로 되어 있어 칸나가 불을 붙여도 금방 불이 붙지 않는다. 저녁 때나 되어야 불이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쪽으로 젊은 연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고리걸듯 손가락을 걸고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햇볕이 뒤로 밀어낸 연인의 그림자 속에선 둘의 손이 완전히 하나로 엮여 있었다. 그림자 속에 둘의 마음이 있었다.
구름과 보행을 맞추며 걷다 보니 어느새 두물경이란 표지석이 자리한 곳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표지석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곳의 섬도 여전했다. 하늘에는 온통 구름이 여기저기 부풀어 있었고, 물에선 섬이 부풀어 있었다. 구름에서 내려다보면 섬은 초록의 구름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 두물머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즐겨 사진을 찍는 사진틀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 장소에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의 줄을 흉내라도 내듯 하늘에선 구름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두물머리를 북한강의 옛철교가 있는 북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완전히 한바퀴 돌고는 다시 양수역으로 돌아왔다. 역의 전광판은 내가 타고갈 전철이 지금 양평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역에서 기다려야 했다. 햇볕이 역의 승강장으로 깊게 파고들어 어디서든 햇볕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늘은 안전문 가까이 몰려 있었다. 역의 의자는 모두 비어 있었지만 어느 의자나 앉아 있으려면 햇볕을 감수해야 했다. 모두가 안전문 앞으로 몰린 빈약한 그늘 속에 서 있었다.
의자에 잠시 앉아 보았다. 햇볕을 등졌지만 등이 따가왔다. 등 뒤에서 햇볕이 속삭였다. 내가 물러간 줄 알았지? 사실 나 아직 가지 않았어. 나 여름이야. 하루 종일 두물머리를 걷는 동안 분명 내가 손잡고 걸었던 것은 가을볕이었다. 어디에서 가을볕의 손을 놓친 것일까. 그렇긴 해도 따갑게 등에 기대며 나를 놀려먹는 여름이 기분나쁘진 않았다.
도심역에서 열차를 내렸다. 112-1번 버스를 타고 신안아파트 후문에서 내렸다. 30번 버스는 금방 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집에 가는 버스는 30번 버스밖에 없다. 중간에 잠시 마음이 하남풍산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탈까 싶었지만 결국은 버스를 기다리는 쪽으로 기울었다.
동네에 도착하니 아침에 절반쯤 집들의 그림자를 기울여 그늘을 깔아두었던 골목에는 그늘이 균일하게 덮여 있었다. 두물머리를 한 바퀴 돌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해의 흔적은 골목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늘이 균일하게 깔린 골목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때로 약속은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우리는 약속을 하고서도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만나지 못해도 우리는 홀로 약속의 날을 걸을 수 있다. 날이 좋으면 우르르 몰려나와 소풍길에 오른 구름과 이제 몸을 모두 내주어도 따뜻한 체온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가을볕, 아직 완전히 간 것은 아니라며 따갑게 등에 기대는 여름이 모두 우리가 만나자고 했던 날에 그녀의 약속이 되었다.
그녀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의 많은 것들이 모두 그녀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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