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서 보낸 가을날의 하루

Photo by Kim Dong Won
2022년 9월 22일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일산의 그녀가 전화를 한 것은 화요일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시간이 났어. 보기로 한대로 두물머리에서 얼굴보자.” 그녀는 이번 주 목, 금과 다음 주 화요일이 가능한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이번 주 목요일이면 22일? 하고 날짜를 구체적으로 집어 확인을 했다. 그녀가 맞다고 했다. 나는 그날 보자고 했다. 그녀는 양수역에서 12시에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양수역보다 운길산역에서 내려 북한강 철교를 걸어서 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녀가 그냥 양수역에서 보자고 했다.
원래 어림짐작으로 해둔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은 시월에 양수역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시월의 어느 때가 될지 몰랐을 약속은 구월로 당겨졌고 날짜는 22일, 요일은 목요일이 되었다. 내가 약속을 시월로 해둔 것은 구월에 잡혀 있는 원고 하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고는 잘 진척이 되질 않았다. 하루 정도 머릿속을 비우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아 걸려온 그녀의 전화에 나는 주저 없이 약속을 구월로 옮겼다.
22일까지 하루는 미사리로 나가 팔당의 한강변을 걸었고, 하루는 올림픽공원의 장미광장으로 나가 가을 장미와 함께 했다. 그러고 나니 그녀와의 약속날이 되어 있었다. 약속날 아침,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녀가 내 말대로 운길산역에서 보자고 했다. 내가 먼 길이 될 거라고 했더니 그녀가 경의선 열차만 1시간 40분을 타야 한다고 나온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경의선 열차는 경의중앙선 열차이다. 차를 갖고 나가면 20분 정도 걸리나 나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는 두 시간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집앞에서 하남검단산 가는 열차를 탔다. 내가 탄 열차의 칸에선 사람들이 하남시청역에서 모두 내렸다. 나는 엇, 벌써 종점인가 하고 창밖의 역명을 급하게 찾아 확인해 보아야 했다. 하남검단산역까지 가는 동안 한 역의 열차 한 칸은 모두 내 차지였다. 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신안아파트 앞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소의 안내판은 팔당역까지 가는 50번 마을버스가 8분 뒤에 온다며 내게 구체적 수치를 알려주었다. 버스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지만 버스는 금방 출발하지 않았다. 버스 바로 앞 횡단보도의 불이 파란 불이었고, 버스는 그 불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팔당대교를 건너는 동안 2차로의 길 중 두물머리로 빠져나가는 오른쪽 길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승용차 한 대가 버스의 앞쪽에서 끼어들 틈새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버스가 뒤에서 쫓아오니 급한 기미가 역력했다. 다행이 승용차는 끼어들 틈새를 찾아내긴 했다.
팔당역의 안내판도 내가 타고갈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몇 정거장 전이라는 식이었다. 그러다 두 정거장 전에 도착하면 전전역이 되고 한 정거장 전으로 오면 전역으로 바뀐다. 그 사이 고속열차 한 대가 역을 지나갔고, 건너편으로 전철이 들어와서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나는 12시에서 30분여분의 시간을 남기고 운길산역에 도착했다. 역을 나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착해서 개찰구를 나오면 출구쪽에 휴게실 같은 곳이 있어. 거기 앉아 있을께.” 그녀에게서 “알았다”는 답이 왔다. 거의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다시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덕소인데 열차가 길게 정차하네.” “아마도 급행 보내느라 그럴 거야.” 경의중앙선에선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느린 일반 전철이 빠른 고속열차를 보내기 위해 역에 서 있곤 하는 일이었다. 그녀도 복병처럼 등장하여 시간을 가로채는 고속열차를 피하지 못했다. 원래 그녀가 핸드폰의 앱으로 시간을 알아보고 몸을 실은 열차는 12시에 정확히 운길산역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서 문자가 오고 조금 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역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열차가 8분 지연된다는 것이었다. 고속열차는 일반 전철의 시간 8분을 챙겨 빠른 속도로 동해를 향하여 달릴 것이다. 경의중앙선에선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곳의 고속열차는 빨리 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속도가 느린 일반 전철을 멈춰세우고 그 시간을 챙겨서 그 빠른 속도에 보탠다.
열차 들어오는 소리에 자리를 일어선 나는 개찰구 앞에 서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개찰구를 빠져나온 뒤끝에서 그녀가 보였다. 서로 손을 흔들어 허공에서 반가움을 살짝 비볐다. 오늘의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둘이 북한강 철교를 걸었다. 예전에는 열차가 다니던 다리였으나 이제는 자전거와 사람들이 다닌다. 혼자 자주 걷기도 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양수역에서 내려 북한강 철교까지 걸어와선 다리 위에 서보고 그 다음에는 아래쪽으로 내려가 두물머리의 강변길을 한바퀴 돌았었다. 그러다 아예 철교를 건너 지금은 폐역이 된 능내역까지 걸을 때도 있었다. 봄에 꽃필 때는 벚꽃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다. 최근에는 운길산역에서 내려 철교를 건너고 두물머리를 한바퀴 돈 뒤 양수역에서 열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행로를 택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위쪽의 새로운 다리로 우리가 왔던 방향을 거슬러 열차 한 대가 다리를 건넌다. 이곳의 열차는 속도가 두 가지이다. 고속열차는 앞쪽이 물고기처럼 유선형으로 생겼다. 그 뾰족한 이마로 앞을 뚫으면서 번개처럼 달린다. 달릴 때면 온통 길을 뒤흔들며 달리는 느낌이다. 우리가 타고온 일반 전철은 그렇게 빠르질 않다. 길은 흔들지 않고 저 자신이 흔들리면서 달린다. 빠른 속도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빠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시선도 뒤쳐진다. 일반 전철은 우리의 시선을 충분히 앞세울 수 있다. 일반 전철이 지나갈 때는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진다.
그녀와 나는 전철의 속도마저 버리고 몸의 속도로 철교를 건넜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바람이 자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강물이 멈춘 것 같아.” 바람이 없는 날의 잔잔한 강은 흐르는지 잠시 서 있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강에 맞추듯 둘의 걸음이 잠깐씩 멈추었다.
강을 건넌 뒤 양수역 앞쪽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있는 <두머리부엌>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녀가 물었다. “한 잔 할래?”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이곳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어 이곳에서 나는 재료들로 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그날그날 메뉴가 달랐다. 오늘은 순두부찌게라면서 주문을 받는 직원이 주방에 대고 2인분을 외쳤다. 그녀가 계란 프라이와 전도 추가로 시켰다. 계란이 유기농 계란이라고 했다. 계란의 노른자가 유난히 노란 색이었다. 내 기억에 계란의 노른자는 항상 주황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뭘하는지 물었고, 그녀는 아이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고 있다고 했다. 괜히 물었나 싶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을 못했다며 그것을 한국 교육탓이라고 말했다. 대개 부모들은 아이들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자신의 괜찮은 아이들을 모두 망쳐놓은 한국 교육에 분개했다. 우리 집 아이 얘기도 물었다. 공부도 안하고 놀아서 한국에서 대학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는데 해외로 눈을 돌려보니 갈만한 곳들이 눈에 띄어 유학을 갔다고 했다. 지금은 취직해서 한국에서 직장다니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한국 교육은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다른 나라에서 갈만한 대학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선택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아이들을 만족시킬 대학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돈은 좀 많이 들 수 있다는 얘기를 덧붙여야 했다.
나는 먹는 것에 크게 까다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먹는 것에 까다로운 편이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면 그녀의 식당 품평을 듣는 것이 그녀를 만났을 때 나의 재미이기도 했다. “이 집은 어땠어?” 내가 물었다. “우선 밥이 별로였어.” “양이 좀 적기는 하더라.” 그녀가 동네 사람들의 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해서 이런 집은 한 번 가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을 가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먹고 나니 가주어야 하는 집과 맛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만드는 집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맛으로 보면 다시 걸음을 하기에 주저스러운 곳이라는 평가였다.
다시 북한강 철교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강변으로 내려갔다. 숲이 좋은 강변 길을 잠깐 걷자 양수대교가 나왔다. 다리밑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의자에 앉을 때 그녀가 걱정을 했다. “차소리로 시끄럽지 않을까.” 다행히 다리를 지나는 차들의 소리는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음은 거의 인식을 못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길의 왼쪽으로 칸나가 줄이어 피어 있었다. 칸나는 생긴 것이 불꽃 같은 꽃이다. 불꽃은 여름에 어울리나 칸나는 가을까지 피어 있다. 나는 멀리 운길산쪽을 가리키며 산의 정상 가까이 자리한 희끗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기가 수종사란 절이야. 절이 거의 산꼭대기에 있는데 저기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절에 수백 년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물이 들면 노란 색이 여기 강변에서도 확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가봤냐고 물었다. 여러 번, 차로. 그러자 그녀가 저런 곳은 걸어서 가야지라며 나의 차를 막아섰다.
중간에서 한 번을 더 쉬었다. 그리고는 족자도가 보이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나무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커다란 버드나무 밑을 지날 때는 그녀가 버드나무는 물을 많이 먹어서 항상 물곁에 자리를 잡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고 보니 물없는 곳에서 버드나무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족자도 앞에 도착하고 조금 있다 그곳의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 둘이 자리를 일어섰다. 냉큼 우리 자리가 되었다. 벤치의 앞은 어지러운 풀밭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벌들이 붕붕거리며 날았다. 꽃들만큼이나 벌들도 많아 보였다. 뻘밭도 생명으로 가득하지만 풀밭도 생명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간간히 강의 물풀을 흔들었다.
우리가 벤치를 일어서자 뒤에 카메라를 든 연인이 서 있었다. 둘의 얼굴이 반가운 표정이었다. 벤치가 비길 기다린 눈치였다. 쉴 때도 뒤를 살펴 사랑에 자리를 내주며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다시 천천히 걸어 느티나무가 유명하고 사람들이 주로 찾는, 우리가 흔히 두물머리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했다. 그녀가 엄지를 들어 “저리로”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엄지와 방향을 맞추고 있는 것은 편의점 CU였다. 편의점에 들어가 그녀가 고른 것은 맥주였다. “이 맥주는 여기밖에 없어.” 그녀가 여기밖에 없다며 손에 두 캔을 집어든 것은 구미호였다. 구미호는 두 가지인데 보라색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IPA 였다. 언젠가 그녀가 말한 적이 있었다. 술은 좀 써야 맛인데 자신은 다른 맥주들은 너무 달콤한 듯 느껴져서 싫고, IPA는 약간 쌉싸름한 맛 때문에 좋다고. 그녀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취하려고 마신다기 보다 그 쌉싸름한 맛으로 인생도 이렇게 써 하면서 잠시 술을 빌려 인생을 음미하는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주로는 오징어 땅콩을 골랐다. 둘이 오징어 땅콩을 안주로 구미호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 되었다.
둘이 영화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헤어질 결심>을 봤다고 했고, 그녀는 아직 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처음에 영화는 사랑은 남자가 박해일이고 여자가 탕웨이일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또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면 당신들이 박해일와 탕웨이가 된다고 말한다고. 그녀가 웃었다. “그 영화 봐야 겠는 걸.” “헤어질 결심을 하는데는 괜찮은 영화야.” 내가 덧붙인 말이었다.
원래의 내 계획은 이곳에서 나름 유명한 연핫도그를 먹으며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이었으나 구미호 IPA에 대한 그녀의 취향과 그 맥주가 어디에도 없고 오직 CU에만 있다는 사전 지식으로 인하여 연핫도그는 일정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 나오면 이곳에서 구미호 맥주 한 캔 정도를 필수로 거쳐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12시에 만난 둘의 시간이 벌써 저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녀가 핸드폰의 앱을 켜서 검색을 하더니 저녁 먹으며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녀가 고른 곳은 양수역 앞에 있는 <썸>이었다. 햄버거 집인데 맥주도 판다고 되어 있었다.
양수역으로 걸어가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뜸해지길 기다리다 그녀가 말했다. “횡단보도면 우리는 언제든 건너도 되는 거 아냐? 우리의 길에서 자동차들 눈치나 살피고. 자동차들이 우리가 건너려고 서 있으면 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나라는 이런 것도 거꾸로 되어 있어.” 차들은 속도로 눈치를 살핀다. 눈치를 살피는 차는 속도를 줄인다. 눈치를 살피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썸>에 들어가 맥주를 골랐다. 나는 버드와이저를 골랐고, 그녀는 버드와이저가 맛이 없다며 하이네캔을 골랐다. 그곳의 맥주는 우리가 선호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실내가 싫어서 바깥에서 먹겠다고 했다. 직원이 맥주를 꺼내주시면 자신이 병마개를 따주겠다고 했다. 대개의 술집에서 그렇듯이 맥주가 든 냉장고는 주방이 아니라 손님들이 술을 마시는 곳에 있었다.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맥주를 들고 나와 바깥의 탁자에 앉고 함께 갖고 나온 잔에 맥주를 따랐다. 한 잔을 마시고 나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릴 때 담아두었던 불만을 꺼냈다. 아니, 손님도 우리밖에 없는데 좀 꺼내서 따주면 안되나. 병마개 따주는 것이 무슨 엄청난 기술로 들리더라. 나는 큭큭 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간이 아니라 얼굴의 인상을 모두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또 벌어졌다. 직원이 나와 문을 열고 “햄버거 나왔습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그대로 들어가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아니, 저 친구 뭐야”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 있는 데까지 와서 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냥 알려주려 나오는 김에 갔다 주면 되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녀가 들어가서 햄버거를 들고 나왔다. IPA를 마신 뒤끝이라 맥주가 싱거웠다. 그녀는 마음이 상해서 그런지 빵도 질긴 것 같다고 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우리 둘을 힐끗거리면서 지나갔다. 술마시는게 흔한 풍경이 아닌가 싶어졌다.
양수역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핸드폰을 열어보더니 열차가 17분 뒤에 있다고 했다. 나는 들어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플랫폼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가 걱정을 했다. “어, 자리 없는 거 아냐?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녀는 올 때는 멀리 왔지만 이제는 다시 멀리 가야 한다. 플랫폼에 사람은 많았지만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을 때 안의 자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앉기에 충분했다.
나는 두 정거장을 가서 팔당역에서 내렸다. 그녀는 길고 오랜 시간 열차를 타고 갈 것이다. 나는 버스를 바꿔타고 팔당대교를 넘었다. 버스가 팔당대교로 올라설 때 다리의 가로등이 모두 불을 밝히고 버스를 맞아주었다. 강건너 편에서 하남이 불을 켜 저녁을 밝히고 있었다. 저녁은 하늘을 붉게 밝혀 놓고 있었다. 노을이 진한 저녁이었다. 강을 건너 버스를 내린 뒤 하남검단산 역에서 열차를 탔다. 그때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Smoke on the Water가 흐른다. Deep Purple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Mr. Big이 2009년 일본 도쿄의 부도칸에서 공연할 때 부른 노래이다. 그녀와의 하루가 노래로 마감이 된다.
하루는 짧은 시간이나 그 하루에 엄청난 것들이 담기곤 한다. 어느 하루 먼길을 와서 나를 만나고 간 누군가가 단 하루에 그 모든 것을 담아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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