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소리없이 찾아온다.
비가 걸음하면 집안에 앉아서도 가늠이 되나
눈은 그렇질 못하다.
분명 보고 있으면 펑펑 소리가 나는데
왜 문닫아 걸고 집안에 있을 때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일까.
가끔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도 있는가 보다.
오늘 눈이 찾아왔다.
예전과 다름없이,
소리없이, 하얗게.
마당 한쪽의 배나무는 봄에 꽃을 피웠다가 꽃을 보낸다.
또 배나무의 이파리는 색을 채웠다가 색을 비운다.
배나무는 매년 그렇게 피우고, 보내고, 채우고, 비운다.
오늘 색을 비운 배나무의 이파리를 눈이 하얗게 채워주었다.
화단을 두르고 있는 돌 위에도 눈이 내렸다.
돌은 단단하고 차갑지만
눈은 오늘 그 단단함을 부드럽게 무마시켜 주었다.
때로 단단하고 차가운 것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다른 것이 되고 싶다.
넝쿨장미가 가지 세 개를 뻗으면
그 사이에 마치 손으로 받쳐든 양
작은 둥지가 생긴다.
그건 오늘 눈의 둥지가 되었다.
2층 베란다에선 눈이 처마밑을 파고든다.
한해 내내 콘크리트의 회색빛으로 덮여있던 처마밑에
오늘 엷게 흰색이 덮이고 있다.
장미는 예쁘다.
눈은 그 예쁜 장미의 목덜미에 눈장난을 하고 싶었다.
옥상의 장독대에도 눈이 내렸다.
큰 단지, 작은 단지가 함께 눈을 맞았다.
눈을 맞으면 크나 작으나 모두 아이가 된다.
그러니 오늘 단지는 크나 작으나 모두 아이 단지이다.
눈은 양철 지붕을 하얗게 덮는데 성공했지만
아마 어떤 녀석은 발을 잘못디뎌
갈라진 요 허방으로 빠졌을 것이다.
눈밭에선 항상 자취가 남는다.
내 발자국의 자취가 길게 꼬리를 끌고 있었다.
앞을 가린 높은 연립주택과 아파트의 사이를 비집고
햇볕이 잠깐 옥상을 찾아들었다.
눈밭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하얀 밤하늘이 그곳에 있었고,
하얀 별이 그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지만
별은 하얀 밤하늘에서 빛날 때 더욱 반짝 거렸다.
베란다에 앉아있던 단지들이
오늘 하얗게 하얗게 원을 그린다.
눈이 오면 세상의 동그란 것들은
하얗게 하얗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옥상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이
내 발길에 밀려
제 자리를 지키던 눈이 서로 입술을 내밀었다.
슬쩍 등을 민 내가 싫지는 않았을 거다.
가끔 계단은 오르내리는 곳이 아니라
얘기의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늘은 눈이 그곳에 앉아 하얀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하얀 얘기는 듣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
넝쿨장미의 이파리는 그곳에 몸을 누이기엔
연약하고 불안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눈은 개의치 않는다.
몸이 가벼우면
세상 어디에 몸을 눕혀도 불안한 곳이 없다.
다만 바람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집 마당 한쪽의 수도꼭지는 겨울이 오면
더 이상 물을 쏟아내지 않는다.
봄까지 수도꼭지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겨울을 견뎌야 한다.
때문에 수도꼭지는 겨울이면 한없이 목마르다.
오늘 그 목마른 수도꼭지 위에도 눈이 살짝 덮였다.
눈이 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좋은 것일까.
그건 눈이 오면 세상 어디에나 사랑을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앞에 세워놓은 자동차 위에
벌써 누군가가 사랑을 새겨놓고 지나갔다.
눈오는 날은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날이다.
연인들은 그날 세상 어디에 가 있어도 사랑을 새길 수 있다.
그러니 눈오는 날엔 꼭 눈밭에 사랑을 새기라.
그러면 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오는 봄까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8 thoughts on “눈이 찾아오다”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게 없군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또 눈이 왔네요.
이번주 금요일, 토요일에 눈이 내린다는데 아무래도 그때 사진찍으러 갈 것 같습니다.
찾아주신 것 고맙습니다.
얼어서 축쳐진 꽃잎도 아름답다는것 첨 알았네요.^^
매년 초겨울 날씨 푸근할 때 봄으로 오인하는 장미가 몇 송이 있더라구요.
넝쿨장미 손보고 나서부터 꼭 그러는 거 같아요.
특별한 날엔 항상 연인들은 들뜨나봐요.
휴우~
하트.. 거참 이쁘게도 그려놓고 갔네요.
사실은 동네 꼬마들이 그린게 아닌가 싶어요.
차 옆에서 눈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꼬마 연인이었을지도 모르죠.
아이들도 다들 이성친구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