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무척 바쁘다.
어제는 밤을 샜으며, 오늘은 뻗어서 정신없이 자고 있다.
나는 어제, 허수경의 최근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하여 넘겨주기로 약속을 했었으나, 결국 마무리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편집장에게 메일을 보내 다음 달로 미루자고 했다.
글은 정리된 말이다. 생각은 항상 앞뒤 없이 고개를 들며, 그 생각이 말에 얹혀 세상에 나올 때도 앞뒤가 없다. 아니, 어찌보면 말은 생각보다 더 앞뒤가 없다. 생각없이 말이 튀어나올 때가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앞뒤 없는 말은 아무 곳에나 뱉기가 어렵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앞뒤 없는 말을 생각없이 뱉다 보면, 말이 생각의 정리를 이끌고, 그렇게 정리된 생각이 글 속에서 정연하게 질서를 찾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말이 많으며, 나의 그 정리되지 않은 말은 언제나 그녀가 들어준다.
그런데 그녀가 바쁘다. 앞뒤 없이 말을 세상으로 내보내, 그녀의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게 해야 하는데, 말은 내 머리 속에 갇혀있다. 말이 그녀 앞의 세상으로 뛰어나가 자유롭게 뛰어놀기 시작하면 말에 말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말이 제가 가야할 곳을 찾아내곤 하는데, 머리 속의 외양간에 갇혀있는 말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되새김질만 계속하고 있다.
그녀가 돈 버느라 바쁘니 내 말이 내 속에 갇혀버렸다.
음, 앞으로 글을 쓸 때는 그녀가 바쁘지 않을 때 써야겠군.
7 thoughts on “정리되지 못한 말들, 내 안에 갇히다”
^^ 저도 남편이 집에 있을때 쉴새없이 말을 하게되는데 가끔 무안을 주곤해요.ㅋㅋ
편해서인지 생각나는대로 다 지껄이게되다보면 제가 생각해도 참 많은 말들을 내뱉는구나 싶어 놀랄지경이죠.^^
저희는 반대죠. 다들 나에게 뭘 물어보길 겁낼 정도로. 언젠가 뭘 딱하나 물어보았는데 두 시간을 떠든 적이 있어서 다들 내가 말이 많아질 때면 그때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쩌구 저쩌구 스타일인데, 그녀는 그래, 그렇구나, 응, 그런 거구나 스타일이죠.
미꾸라지를 씻을때 소금을 뿌려놓는 것을 보았나요? 안그래도 미끄러운 미꾸라지가 해감을 토해내면서 서로 부딪히다 보니 하얀 거품이 부글거리고 더 미끄러워져요. 가끔 내가 뱉은 말이 제 갈곳을 못찾는 것 같아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붙이다 보면 미꾸라지가 토해낸 거품같이 부글거리기만 하고 잡힐듯한 말이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본질에서 비켜나가는 느낌…그래서 말을 하면 할수록 미꾸라지처럼 거품을 물게 되는 것 같아요.
참으로 곁길로 새지않고 올곧게 나아가도록 글을 적으심이 대단하세요…프로와 아마의 차이겠죠…^^
말은 실수가 많아서 많이 뱉지 않는게 좋지만 그런 중압감없이 말을 뱉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거 같아요. 24시간을 긴장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실수도 편안하게 생각하며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죠. 계획대로 씌어지는 글을 글이 아니란 얘기도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글의 길을 밝혀줄 얘기 상대가 있어야 해요. 그 얘기 상대에게 하는 말은 물론 어지럽기 짝이 없지만요.
내가 하고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긴 한것 같아요. 근데 전 그렇게 하다보면 너무 쓸데 없는 말들도 많이해서 후회하는 때가 생기기도 해서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마구 적어대기도 해요. 그걸 다시 읽어보면 정리가 되더라구요.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고거 정리하는 맛도 때론 괴롭지만 매력있는 일인 듯 싶어요.
저도 시집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단상을 적긴 하는데 이번 시집은 그렇게 했는데도 흐름이 잘 잡히질 않더군요. 한편 한편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말해야 하는 입장이라… 어쨌거나 오늘은 이제 시집 전체를 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어요.
좋으시겠어요. 이제 쓰는 일만 남으셨네요.
저도 지금 컨셉을 잡아야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잘 안되서 자꾸 다른 짓만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