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이소선합창단은 울산에서 열린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에 참가하여 노래했다. 축전은 울산의 태화강 국가정원박람회 야외공연장에서 열렸다. “노동존중, 생명존중의 너른 바다로”를 합창 축전의 모토로 앞에 내걸었다. 정말 오랫만에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면 공연이었다.
합창단이 울산으로 가는 길은 11월 6일 아침 서울역 앞으로 모여 전세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버스는 8시 20분경 서울을 떠났다. 내려가는 길의 차창 밖에서 가을이 색색으로 깊어져 있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오후 1시반쯤 무대가 있는 태화강 야외공연장에 도착했다.
짧은 시간 무대에 올라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선 대기 텐트 근처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연습 시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가령 알토 파트가 야외의 적당한 장소를 골라 그곳에서 음을 맞추며 연습을 하자 근처 강변의 고층 아파트가 그 노랫소리를 듣겠다고 거대한 몸을 소리가 나는 곳으로 기울였다. 음이 조금 잦아든다 싶자 더욱 노래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이 아파트의 층수를 낮추었다. 하늘에 흩어져 있던 구름들은 넓은 하늘을 버리고 일제히 야외공연장 위로 모여들어 몸이 부딪치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옆의 대나무 숲에선 대나무들이 노래쪽으로 몸을 기울이다 허리가 꺾이기도 했다. 노래의 매력은 그런 것이다. 노래에 홀려 무수한 선박들이 난파당했다는 세이렌의 전설은 때로 전설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된다.
이소선합창단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순서가 거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밤으로 바뀌고 세상의 빛들이 서산너머로 자러가고 난 뒤에 서야 순서가 왔다. 그리하여 시간이 8시를 넘기고 있을 때 무대가 이소선합창단으로 채워졌다.
이소선합창단은 모두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첫 곡은 <사랑노래>였다. 백무산의 시가 노래로 옮겨간 곡이다. 노래는 “슬픈 사랑 노래”였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감당해온 사랑이다. 노동자의 사랑은 자주 슬픈 사랑이 되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슬픔은 우리들을 주저 앉히는 것이 아니라 “굳센 노래”로 솟아 올랐다. 현실은 이 땅의 노동자를 슬프게 했지만 노래는 사랑을 일으켰다. 노래의 가장 큰 미덕은 슬픈 사랑을 음에 얹어 그 슬프고 힘겨운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려준다는데 있다. 첫곡이 울려퍼진 순간은 듣는 사람들의 귀로 들어온 노동자의 슬픈 사랑이 온몸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운 순간이기도 했다.
두 번째 곡은 <우리라는 꿈>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삶이다. 노래가 말한다. “하루치 노동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고 “하루치 눈물을 삼키며 여기까지 왔”다고. 얼마나 견디기 힘든 삶이랴. 하지만 노동자들이 삶을 견디며 살 때 바람도, 햇볕도, 저 꽃들도 견디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에 동참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결국은 모두 하나로 뭉쳐 우리라는 꿈이 된다. 우리의 꿈을 부른 노래가 이제 노동자들의 것이었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를 때, 노래는 마지막 구절을 남기고 마치 멈춘 듯 잠시 끊긴다. 그 순간, 객석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박수가 나오자 노래는 다시 이어져 마무리 구절을 부르며 사랑으로 솟아 올랐다. 사람들이 모아준 박수가 노래의 사랑을 일으켜 세운 힘이 되었다. 이소선합창단은 중간 박수의 힘으로 노래를 마무리한 유일한 합창단이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 때 모든 합창단이 무대에 함께 올라 <우리의 꿈을 노래하리라>를 불렀다. “더 이상 일하는 우리의 땀이 고통의 눈물이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꿈이 그 노래 속에 있었다. 잠시 노래가 “노동이 아름다운 이 땅”을 그곳에 펼쳐놓았다.
저녁을 먹었으며 흩어져선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오랫만에 누리는 일상이었다. 11월 7일에는 울산의 대왕암 바닷가를 구경했으며 그것으로 울산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향했다. 아침에 떠났던 서울을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모두 집으로 흩어졌다.
먼길을 다녀왔다. 오고가는데만 10시간이 넘게 걸린 길이었다. 울산에 간 합창단은 그곳에서 잠시 노동자의 노래가 되었다 왔다. 언제나 거리에서 노동자의 노래가 되는 합창단, 이소선합창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