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12월 3일 토요일 공간 소선에서 개관 기념 행사를 가졌다. 공간 소선은 이소선합창단이 마련한 자체 연습실이다. 그동안은 10년 세월을 이곳저곳의 연습실을 대관하여 이용해 왔다. 자체 연습실은 시간 제한도, 기한이 다되어 또다른 곳을 알아봐야할 걱정도 없는 곳이다. 이제 이소선합창단에게는 노래의 둥지가 생겼다. 다른 합창단이나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대관도 한다. 그래도 매주 수요일은 온전히 이소선합창단의 몫이다.
개관식은 5시였지만 미리 모여서 청소도 하고 목도 풀었다. 연습실을 마련하는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동안 합창단과 인연맺은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을 개관식에 초대했다. 개관의 즐거움을 나누는 또다른 방법으로 음식도 준비했다.
그래도 합창단이라서 노래로 손님을 맞았다. 합창단은 모두 다섯 곡의 노래를 불렀다. 지휘자 임정현이 노래마다 설명을 했다. 첫곡은 <천리길>이었다. 임정현이 시위 현장에 나가 가장 많이 부른 노래일 것이라고 했다. 노래는 노래 한 곡으로 천리길을 달린다. 아직 과학계는 아득한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웜홀 이동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노래는 그 웜홀 이동을 노래 한 곡으로 이루어낸다. 그 순간 이동이 천리길을 부를 때마다 이루어진다.
두 번째 곡은 <우리라는 꿈>이었다. 이소선합창단의 노랫말 공모를 통해 탄생된 곡이다. 사람들에게는 낯선 곡이지만 사람들은 처음 들으면서도 노래가 여는 우리라는 꿈 속으로 들어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세 번째는 모두에게 익숙한 곡이 등장했다. 곡명을 말하지 않아도 노래와 함께하면 모두가 무슨 노래인지 알게 되는 곡이다. 노래는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라는 노랫말로 시작된다. <상록수>가 그렇게 익숙한 선율와 가사로 사람들과 함께 했다.
네 번째 곡은 <대결>이었다. 잠시 피아노가 휴식을 취하고 기타가 반주를 맡았다. 이 노래는 노래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곡이다. 노래는 “랄랄랄라 랄랄라 힘찬 투쟁 랄랄랄라 랄랄라 민주노조 만만세”라는 노랫말로 시작된다. 만약 집회 현장에서 힘찬 투쟁, 민주노조 만만세를 외쳤다면 랄랄랄라 랄랄라가 그 구호와 함께 하기가 어렵다. 그런 구호에 그런 구절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호가 노래가 되면 랄랄랄라 랄랄라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한 구호와 함께 할 수 있다. 그 순간 그 구절은 투쟁과 노조 활동이 얼마나 즐겁고 흥겨운 일인지 아느냐고 사람들에게 되묻게 된다. 아울러 힘찬 투쟁이나 노조라는 말은 말자체가 자본가들이 조성해놓은 그릇된 관념들 때문에 과격함을 떠올리게 하기 쉽다. 그러나 노래는 그 구호에서 과격함을 지우고 구호를 아름다운 선율에 싣는다. 그러고 나면 같은 구호가 힘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힘으로 바뀐다. 만만세는 아울러 노래 속에서 또박또박 끊어서 확고하게 매듭이 지어진다. 그 순간 노동자의 투쟁과 노조 활동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선언이 된다. 노래는 단순히 노동자의 구호를 노래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노래는 구호가 갖는 한계를 그 짧은 구절의 노래 속에서 순식간에 극복한다. 그것이 바로 노래의 놀라움이다. 이제 노래는 아름다운 힘으로 세상을 재편할 수 있게 된다. 대결을 들을 때 그 아름다운 힘에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결>의 아름다운 힘이 공간 소선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 곡은 이소선합창단의 공전의 히트곡,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였다. 집회 때 이곡의 제목을 담은 깃발도 보았다는 증언이 있다. 구호가 노래가 되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또다시 증명하는 곡이다.
이소선합창단은 거의 항상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쫓겨난 노동자들 앞에서 그들의 노래가 되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거리의 자동차들 소음이 노래를 방해하곤 했다. 실내 연습실에선 그 어떤 방해도 없다. 노래가 온전히 모두 듣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더구나 마이크 없이 맨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기계음은 기계에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노래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 바로 코앞에서 목소리만으로 듣는 노래에선 기계음에 기댈 때의 그런 아쉬움도 없다. 때문에 마치 노래에 실린 인간의 체온을 그대로 걷네받는 느낌이 된다.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체온을 나누는 일이었다.
다섯 곡의 노래로 손님들을 환영하고 사람들이 연습실을 마련할 때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손님들과 함께 마련한 음식을 먹고 술도 나누었다. 간간히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춤을 추었다.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은 몇몇은 시간이 세상을 어둠으로 칠하며 밤의 색으로 짙게 덮을 때까지 자리를 일어나지 못했다. 마음 벅찬 하루가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