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그 텅빈 꽃에 대하여

Photo by Kim Dong Won

당신은 알고 있는가.
장미가 텅빈 꽃이란 사실을.
당신에게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그 혹은 그녀에게 줄 장미 한송이를 손에 들었을 때,
당신은 불현듯 깨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으로 속을 꼭꼭 채운 듯한 그 꽃이
사실은 텅빈 꽃이란 사실을.
그렇지 않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건네줄 당신의 사랑이
어찌 그 꽃에 담길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당신이 사랑을 갖는 순간,
장미는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그 아름다움을 비우고,
당신의 사랑을 담고 그 혹은 그녀에게 갈 텅빈 꽃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은 온통 텅텅 비어있다.
우선 당신이 텅텅 비어 있다.
그 텅빈 자리는 내가 나의 사랑으로 당신을 채울 자리이다.
나도 텅텅 비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채워질 것이 당신의 사랑임을 알고 있다.
사랑을 갖는 순간 세상은 온통 텅 비어 있다.
그 빈자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 자리는 계속 비어있는 채로 남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주인이 된다.
나는 항상 장미를 볼 때면
아름다움을 생각지 않고 아무 것도 없어 텅빈 꽃을 떠올릴 테다.
내가 좀 외롭다 싶을 때도
나는 여전히 장미를 텅빈 꽃으로 들여다 볼 테다.
그리고 빈자리를 채워 나에게 올 당신의 사랑을 꿈꿀 테다.

Photo by Kim Dong Won

6 thoughts on “장미, 그 텅빈 꽃에 대하여

  1. 한송이라도 좋으니까 가끔 받아봤음 좋겠어요.
    결혼 2~3년까지는 주더니 그후론 꽃사는게 쑥스럽다는듯
    사는걸 꺼리더군요.
    그후론 제가 사서 향기를 음미하지만 사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겼을때 더 기분좋잖아요.
    최근에 받은것이 친구가 놀러올때 사온 노랑장미네요.^^
    과일같은것보다 꽃이 최고로 좋아요.^^
    저도 나중에 김동원님댁의 정원처럼 넝쿨장미 키워볼수 있는 집에서 살고싶어요.^^

    1. 그녀가 제가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그 장미만 가꾼다고 핀잔을 주곤 합니다. 아무 것도란 것이 설겆이나 청소를 안해준다는 얘기죠. 저는 비오는 날은 장미를 사갖고 들어올 때가 있죠. 그때는 장미가 무지 싸거든요.

    1. 쓰고 나니까 역시 난 연애편지의 명수야, 라는 생각이 절로…
      하지만 언젠가 장미를 엉뚱한 곳으로 사갔다가 지금까지 두고두고 원성을 듣고 있답니다. 그 날이 결혼기념일인가 그랬는데 그 날을 까마득하게 잊고 그녀와 같이가서 장미를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잔뜩 기대에 부푼 그녀의 마음을 모르고 그 꽃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니.
      그날 모임에서 돌아오는데 아차, 오늘이 그 날이네, 하고 생각이 났다는 거 아녜요.
      장미만 보면 그때 얘기를 해서…
      그나저나 아키님의 응용력도 보통이 아니세요, “꽉찬 장미 한 송이”이라니. 제목을 요걸로 바꾸던가 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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