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는 체온이 그립다.
체온이 그리운 이끼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 위에 몸을 눕힌다.
돌 위에, 나무 위에, 혹은 바위 위에.
오늘 내가 지나는 길목에선 이끼가 기와 위에 몸을 눕혔다.
그곳에 무슨 온기가 있을까.
그러나 이끼가 덮은 기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내 시선에 그곳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러고 보면 따뜻함이란 체온의 느낌이라기 보다
체온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상을 덥힐 때의 느낌이다.
체온에 대한 그 그리움이 없으면
세상은 서로 부등켜안고 있어도 차갑기만 하다.
반대로 체온에 대한 그 그리움이 있으면
티끌만큼의 온기로도 따뜻하기만 하다.
꽃은 하늘이 그립다.
꽃의 키는 작고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다.
하늘이 못견디게 그리울 때
꽃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개를 바짝 세우고 최대한 하늘로 발돋움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꽃은 오늘도 발끝을 세우고 목을 빼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느날 하늘이 그 꽃의 머리맡으로 내려올지.
그렇게 때로 그리움의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하늘이 홀연히 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꽃은 오늘도 그 전설을 꿈꾼다.
3 thoughts on “체온이 그리울 때, 하늘이 그리울 때”
이끼 좀 공수해와야겠네요.
아~ 그립다~
뭐, 둘이라고 별 수가 있나요.
One is the loneliest number
That you’ll ever do
Two can be as bad as one
It’s the loneliest number since the number one
Aimee Mann이 부른 노래 One의 시작 부분이죠.
하나가 외로운 것 같지만 둘도 하나에 못지않게 외로울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위의 글에다 그 음악을 깔면 딱이겠네.
둘일때 외로움을 느끼면 외로움이 좀.. 뭐랄까?
순수한 외로움은 아닌거 같아요.
“왜 니가 있는데도 외로운거야?” 혹은 “왜 넌 날 외롭게 하니?”
이런 식의 짜증(?)이 생겨나니까요~
이스트맨님과 같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람이 없다보니 둘이 있을때의 외로움에 대해선 여기까지 밖에 생각이 안드네요.
근데 분명한건 둘일때 외로운게 훨씬 더 힘들다는 거죠. 위의 음악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