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양근대교를 건너며

Photo by Kim Dong Won

오늘 오후에 차를 몰고 양평으로 나섰다.
일요일 오후의 양평길은 나가는 것은 쉽지만 같은 길을 따라 돌아오기는 쉽지가 않다.
우리가 바람같이 양평으로 나가는 동안 들어오는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간을 길바닥에 지천으로 흘린채 꾸물거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양평의 초입에 있는 양근대교를 건너 강의 반대편으로 간 뒤 퇴촌으로 들어가서 팔당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건 어느 경우에도 거의 막히는 법이 없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도 양평에서 퇴촌으로 방향을 꺾는 입구까지는 예외없이 길이 막힌다.
우리는 그 길이 짤막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항상 우리의 참을성으로도 감내할 수가 있었다.
차는 양근대교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차를 버리고 다리 위로 내렸다.
차는 그녀가 끌고 다리의 건너편으로 가버렸다.
나는 다리 위에서 강아래 풍경을 내려보며 터덜터덜 걸었다.
그 풍경은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는 편리하기 그지 없지만 나는 풍경이 그렇게 편리함을 탐하는 시간의 우리를 피하여 그 아래쪽에 숨어있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걸어서 천천히 다리를 건널 때만 그 풍경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차를 타고 건널 때는, 그것이 버스처럼 좌석이 아주 높은 운송수단이 아닌한 강아래 풍경을 내려다 보기 어렵다.
버스를 탔다고 해도 강물을 노닐고 있는 철새들과 시선을 맞추기는 매우 어렵다.
버스는 그냥 그 강을 훌쩍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다리품을 팔며 강을 건널 때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간다.
다리를 건너가며 강아래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풍경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속도가 그 풍경을 삼켜 버리고 있다는.
그 풍경을 되찾고 싶다면 그냥 차에서 내려 속도를 내놓고 터덜터덜 걷기만 하면 된다.
오늘 그렇게 걸어서 양근대교를 건너며 그 아래 숨어있던 풍경을 한참 동안 내려다 보았다.
아마 아래쪽으로 내려가 강뚝으로 걸어보면 숨어있던 또다른 풍경이 나타날 것이다.
속도를 버리면 세상의 흐름에 뒤쳐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잃어버렸던 풍경을 되찾는 행운이 있다.
그러니 종종 속도를 버리고 걸어볼 일이다.

10 thoughts on “걸어서 양근대교를 건너며

  1. 92년도 양평 강하면에 내려갔을때만 해도..배를 타고 양평읍엘 가야 했지요…배위에 사람도 차도…양근다리를 보니 왠지 그때 생각이 나네요….별스레 바람이 강한곳이 양평인데..고생 하셨겠어요..맑은날 이 다리에서 용문산쪽 전경도 멋지지요^^

    1.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는 풍경이 너무 멋졌을 것 같아요. 요즘은 왠만큼 도시를 벗어나질 않으면 온통 어지러운 간판들이 가로막는 바람에 좋은 풍경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가까이 양평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때가 많아요. 사실 이 다리에서 오래 전에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죠. 좀더 일찍 출발했으면 좋은 사진을 찍었을 텐데 이 날은 빛이 부족해서 아쉬웠어요. 안개가 많이 끼어서 아주 좋은 풍경이 나왔었거든요.

  2. 작년 늦게서야 이 곳을 기억하고 출입하면서
    종종 생각과 일상의 흐름을 잡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새해에도 건필하시고, 건사(^^)하세요.

  3. 새해에도 좋은일 많이만드시길 기원합니다.
    렌즈를 통해서면 모든사물이 그리아름다워지는지 저도 올해한번 느껴보려구요…,

    1. 좋은 생각이예요. 렌즈를 통해 보면 세상이 좀 달리 보여요. 아무래도 세상을 유심히 살피다보니까 안보이던게 보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진표네는 아이들 사진으로 시작하면 딱일 것 같아요. 매일매일 아이들 사진을 빼놓지 않고 찍어보는 거죠.

  4. 자신이 원하는 사진 한장을 담기위해서 굉장히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게되는듯해요. 옆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런 사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 사진은 빨리 지나가며 찍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런 사진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걸어가며 찍어야 해요. 아무래도 찍기 전에 관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많은 시간을 대상에 할애하게 되죠. 그것이 사진의 재미이기도 하구요. 어제의 풍경은 안개가 한몫했죠.

  5. 새해 덕담을 받은 기분입니다.
    제가 조급증같은게 좀 있어서, 잘 새겨두어야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안개속의 풍경처럼 운치 짱이었을것 같아요.
    새해 첫날, 부럽게 보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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