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23일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넓고 푸른 풀밭을 놔두고
왜 하필 옹색하게 그런 곳에 자리를 잡았니?
가끔 대답이 뻔할 것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보도블럭 사이에서 머리를 내민 풀을 보았을 때도 그렇습니다.
대답이야 뻔하겠죠, 뭐.
바람에 날린 풀씨 하나가 그 사이로 불시착을 한 뒤,
삶을 질기게 가꾸어 냈을 것입니다.
아니면 원래 그곳이 풀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풀밭에서 풀을 걷어내고 보도 블럭을 깔았지만
아마도 풀들의 뿌리를 모두 걷어내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 뿌리가 보도블럭의 사이로 싹을 내밀고 또 질긴 삶을 가꾸어 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우린 질기고 억척스런 삶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내가 던진 질문은 그런 뻔한 대답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질문을 던졌을 때, 풀 하나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 인간들이 다들 틈새시장 틈새시장 하길레
나도 한번 틈새시장 개척해 본 거지.
어이구, 인간들 얘기 믿을게 못되는데
그 걸 믿다가 요모양 요꼴 된 거지, 뭐.

난 그 얘기들으며 피식 웃고 풀의 곁을 지나쳤습니다.
보도블럭 틈새의 풀 하나가 질기고 억척스런 삶을 버리고
틈새시장으로 뛰어드는 모험의 삶을 살다가 낭패를 겪고 있었습니다.
풀은 낭패스러워도 난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걷다가 보도블럭 위에서 또 다른 풀을 만납니다.
같은 질문을 또 던져봅니다.

-여기선 너를 만날 수 있잖아.

오호, 황홀한 대답입니다.
종종 질문은 대답을 구속합니다.
하지만 질문이 뻔해도 대답이 그 구속을 피해가면
뻔한 질문으로도 세상이 즐거워집니다.
세상을 질문이 속박하는 대답의 구속에서 모두 풀어주고 싶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23일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6 thoughts on “틈새시장

  1. 저 역시 요근래 일상에서 거닐다가 보도블럭 사이에 옹기종기 돋아난 풀들이 다 보였어요. 거기도 있네요, 그 풀들은 제각각 질문에 구속받기도 받지 않기도 하면서요. 전 종종 생뚱맞게 엉뚱하게 답해선 ‘사오정’ ‘형광등’ 이런 얘기를 듣곤 해요. ㅎ

    1. 딸라미가 보는 프로그램 중에 Runway라는 패션 컨테스트 비슷한 게 있어서 가끔 같이 보게 되는게 그거 보면 과일과 같은 것으로 옷을 만들라는 과제도 나오더라구요. 한마디로 일상의 재료로 최대한의 창의력을 실험하는 거죠. 그냥 살아갈 때도 그런 창의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2. 저희 동네에도 아스팔트를 깐 이듬해에 대추나무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잘자라 대추도 큼직하게 열리더군요.
    어느집 대문옆이었는데 그 나무를 보고 주인이 그 부분만 흙이 나오도록 깨주어
    지금은 정말 큰 대추나무예요.
    참..어디에서 태어나도 다 자기하기 나름이구나~하는 생각도 하구.^^
    근데 저 풀들은 왠지 가서 뽑아주고싶어요.ㅋㅋ

  3. 수퍼마켓 가는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 앞에 길다란 정원이 있는데,
    무릎높이의 콘크리트 담이 깨진 중간중간에 민들레가 피어있어요.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참으로 불편하게, 윗면도 아닌 옆면에서 삐죽이 나와 꽃을 피웠었어요.
    아까 낮에도 보았는데, 지금은 노란꽃잎을 모두 날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매력은 많이 사라졌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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