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마당에서 장미가 피고 또 졌습니다.
보통은 매년 한창 때의 장미에 눈을 맞추고 장미를 노래했지만
올해는 장미의 처음과 끝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한창 때의 장미가 예쁜 것은 분명했지만
그 분명한 아름다움에 눈을 맞출 때
우리가 장미의 많은 것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장미에겐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3월 14일.
장미가 잎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것을 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 붉은 색 때문이었죠.
장미의 잎은 붉게 나서 초록으로 바뀝니다.
그러고 보면 장미의 잎은 꽃이 오는 것을 알리는 징조이자 예고입니다.
장미는 먼저 붉은 색의 잎을 메신저로 보내
머지 않아 꽃이 올 것을 알리며,
붉은 소식을 담고 우리에게 온 그 잎은 꽃의 소식을 전한 뒤,
초록으로 우리 옆에 눌러앉습니다.
5월 9일.
잎들은 하나둘 피어 초록의 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면
그 초록의 바다에서 마치 해가 떠오르듯
붉은 장미 한송이가 피어오릅니다.
초록의 여명으로 온 장미가
드디어 꽃의 아침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5월 14일.
한번 초록의 바다에 꽃의 아침이 밝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붉은 빛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기 시작합니다.
5월 17일.
꽃은 초록의 바다를 솟구쳐 푸른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5월 17일.
그 붉은 기운이 완연해지면
아무도 장미꽃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그 붉은 가슴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5월 18일.
비가 내렸습니다.
장미의 잎들이 빗방울을 받쳐들고 있더군요.
아마도 꽃에 가장 어울리는 보석이라 생각하고 마련했나 봅니다.
그러나 잎은 그 보석을 꽃의 앞에 오래 놔두진 않았습니다.
오전이 채가기 전에 그 보석을 모두 치워버렸죠.
5월 18일.
장미는 아무 것도 걸칠 것 없이
그저 꽃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요.
종종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죠.
5월 20일.
그래서인지 난 종종 장미꽃이 피면,
그때부터 시선의 초점을 잃고 맙니다.
붉은 색밖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러면 잎의 색이 점점 깊어지면서 진한 녹빛으로 빚어내는 초록 바다를 눈에서 놓치고 맙니다.
5월 26일.
그러다 어느 햇볕이 쨍한 날에, 나는,
햇볕을 몸에 한껏 품은 장미잎을 밑에서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 투명함은 어느 날 잎이 받쳐들었던 빗방울에 못지 않았습니다.
5월 29일.
그리고 이제 꽃잎이 지기 시작합니다.
6월 2일.
꽃이 질 때쯤
나는 넝쿨장미의 줄기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넝쿨장미의 줄기는 새로난 것은 초록빛이고,
몇년을 넘긴 것은 짙은 흑빛입니다.
올해도 몇개의 새로운 줄기가 또 솟았습니다.
잎과 꽃이 모두 그 줄기를 타고 내게로 온 것이었더군요.
그러니 장미의 줄기는 잎과 꽃이 내게로 오는 길입니다.
장미의 줄기가 길을 터주면
그 길을 따라 잎이 내게로 오고, 또 꽃이 내게로 옵니다.
보통은 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게 마련인데
매년 장미의 길엔 눈길 한번 주지 않다가
장미가 막 꽃을 떨꾸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6월 10일.
이제 장미 송이 중엔
꽃잎을 다 털어버린 것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올 때는 장미의 길로 와서
갈 때는 절대 그 길로 돌아서는 법이 없이
꽃잎을 모두 마당으로 털어냅니다.
6월 15일.
마당 한켠에 장미잎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올해 눈여겨 지켜 보았더니
장미는 줄기가 내준 길을 따라 내게로 왔습니다.
먼저 붉은 이파리를 메신저로 내게 보내 자신이 올 것을 알리고,
그 다음엔 잎들을 촘촘히 모아 초록의 바다를 만들더군요.
그러고 나면 붉은 꽃이 해처럼 그 바다 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런 뒤 꽃잎을 모두 마당으로 내려놓고 꽃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꽃이 왔다가 돌아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와선 매년 내 마음 속에 쌓이고 있었습니다.
가끔 살다가 이제 젊은 날 뜨거웠던 우리의 사랑이 희미해졌다 싶을 때면
가슴 속을 조용히 열어봐야 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사랑이 한해 한해 그곳에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랑은 왔다가 돌아가는 법은 없습니다.
와선 지고, 그리고는 우리들의 가슴에 쌓입니다.
마당 한켠에 바싹 마른 장미의 잎들이 아주 곱게 쌓여있었습니다.
10 thoughts on “장미의 화원 2007”
“살구나무 꽃망울이 처음 나뭇가지를 뚫고 올라올 때는 붉은 빛을 띈다.
박태기나무 꽃망울도 검붉은 빛이고 장미의 새순도 붉은 색깔이다.
꽃망울이나 새순만 그런게 아니라 복숭아나무 같은 것은
가지 끝이 온통 붉은 빛으로 바뀐다.
나는 겨우내 참고 참아온 나무의 열정과 설레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뜨거운 기다림의 마음이 나무를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도종환님 글을 읽다가 붉은 색을 띄며 싹을 틔우는 다른 나무들도 알게됐어요.
맨위의 사진이 생각나 퍼왔죠.^^
사실은 오늗도 장미의 잎을 찍고 있었는데
여전히 새로나는 잎들은 이 한여름에도 붉은 빛이더군요.
좀 신기했어요.
당연히 초록이라고 생각했던게 붉은 빛이었으니까요.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냥 새순 하나에서도 세상을 달리 읽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4월과 5월의 장미란 노래를 김동원님께~^^
http://blog.daum.net/ss2424/11648160
저도 장미의 풋풋한 향기를 가지고 싶어서 마트에가면 장미향수를 살까해요.
눈쌀 찌푸려지지않는 진짜 장미의 향기가 있기는 할까 모르겠지만.^^
노래 감사.
따라서 불렀어요. 저도 아는 노래거든요.
장미 이야기의 결정판인가요? ㅎㅎ
두 분 덕분에 올해는 장미의 한 해 살이를 제대로 보고 느끼고 갑니다.
배경에 따라 장미 한 송이의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하나 하나 다 아름답지만
그 중 5월18일, 아스라한 파스텔 배경의 장미 한 송이에
눈길이 젤 많이 가네요~
그때가 제일 예쁠 때죠.
결정적이게 붉게 시작하는 푸른 잎의 시작을 놓쳤네요.
내년엔 눈이 붉어질만큼 벼르며 꼭 챙겨봐야겠어요.
장미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다 엮으시고, 아주 대단하세요.
동원님의 이야기들도 매일 아주 곱게 쌓이고 있단 생각이에요.
그래도 하루라도 여행을 떠났을 때가 역시 좋더라구요.
집안 얘기보다 여행에서 듣는 삶의 얘기가 훨씬 더 좋다고나 할까요.
집안은 매일보는 거라 감흥이 덜한 거 같아요.
여행가면 온통 처음보는 것들이라 뭘봐도 새로운 것 같습니다.
올해는 동네한바퀴씩하며 ‘내가 참 행복하구나, 여기가 여행지다’ 그랬는데
한 2주만에 버스터미널을 향하고, 다른 도시를 거닐며 그랬어요.
‘역시 여행과 일상은 달라’라고요. 뭘 봐도 새로운 것, 온통 호기심 천국인 여행이 저 역시 좋단 생각예요.
여행은 심지어 남들의 일상인 여행지 사람들의 삶까지 신선하게 보이도록 해주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