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약속

맥 프로그램 캘린더 캡쳐 화면
22세기의 첫해는 2101년이다. 첫날이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창동의 그녀가 말했다. “우리 다음 세기에도 또 만나.” 나는 곧바로 “뭐 다음 세기?”라고 되묻고 있었다.
머릿속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건 내가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만남의 기약이었다. 만남의 기약은 대개 하루나 이틀의 시간 안에 잡히곤 했다. 만남의 기약을 하루의 시간 뒤에 세우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 내일 만나”가 되었고 기약의 시간을 하루 더 뒤로 미뤄 이틀로 잡으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 모레 만나”가 되었다. 그러한 기약의 시간은 내게 익숙했다. 그러나 다음 세기는 처음이었다.
물론 간혹 “우리 다음 생애에도 다시 만나”라고 속삭이는 연인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다음 생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다음 세기에도 다시 만나라고 했다. 다음 세기는 다시 만나려면 아주 계산이 복잡해지는 기약의 시간이었다. 막연하긴 해도 다음 생애가 오히려 기약된 다음으로는 분명하게 계산을 세울 수 있는 시간대였다. 서로 죽었다가 다시 환생하는 시기를 맞추면 되기 때문이었다.
세기는 좀 복잡하다. 그녀와 나는 20세기에 태어났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20세기가 21세기로 바뀌었다. 우리가 20세기에 만났다면 다음 세기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21세기에 만났다. 이제 다음 세기로 만남을 다시 기약하려면 나는 22세기에 그녀를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이 가능하려면 나는 죽었다가 22세기에 태어나거나 아니면 22세기까지 끈덕지게 버티며 살아 남아야 한다. 22세기가 되려면 아직 80여년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 버티기는 어렵다. 다시 태어나기에는 너무 이르다. 한번 정리한 삶을 곧바로 다음 세기에 다시 잇는다는 것은 아이씨, 죽었는 줄 알았는데 이건 죽은 것도 아니었어, 너무 피곤해라며 후회할지도 모를 환생이 된다.
상황은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그녀도 22세기에 다시 환생하기에는 시간이 급하고 또 22세기까지 버티기엔 그녀나 나나 남겨놓은 시간이 너무 길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머릿속의 계산을 겨우 정리하여 마쳤더니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래, 다음 세기. 다음 세기에서 다시 만나는 거 절대로 잊지마.”
나는 엉겹결에 답했다. “그래 꼭 기억하고 있을께.”
나는 복잡한 계산을 잘 정리하고 분명하게 답을 구해내는 머리를 가졌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말도 안되는 기약에 그 기약을 잊지 않겠다고 답을 했다. 물론 나는 이 운명의 끝을 알고 있다. 나는 기억을 잊을 것이며 그녀도 내게 받았던 다짐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 그런 분명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기약을 아득히 멀리 두면 살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못할 미래가 오늘이 될 때가 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그녀를 보낼 때, 여느 때처럼 그녀는 다시 익숙하게 다음 주 무슨 요일에 만나자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다음 주의 어느 하루는 22세기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애매모호하게 기약을 해도 둘의 사이에서 그 기약의 시간은 만나는 다음 순간을 다녀간다.

다음 주의 기약된 날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나누던 얘기를 중간에서 뚝 끊어버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난 세기에 만났던 것 같지 않어?”
나는 대답대신 피식 웃었다. 나는 그 느낌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때로 어떤 비밀은 당사자가 말해놓고도 전혀 모른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