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말다툼을 했다. 내가 연금이 나오면 어느 단체에 매달 10만원씩 후원을 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이 단초가 되었다.
돈이 말을 지배할 때: “그 연금은 둘이 같이 벌어서 부은 건데 어떻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니 마음대로 그런 결정을 해. 한달 1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미리 상의를 해야지.”
돈이 말을 지배하면 세상의 일은 돈의 지분으로 결정된다. 돈의 지분으로 세상의 일이 결정될 때 상대에게 삶은 돈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현재 먹고 사는 생활비를 대고 있으면 과거는 까마득하게 잊혀진다. 그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상대가 벌었던 적이 있어도 현재의 돈은 그 사실을 까먹는다. 돈은 그래서 권력과 같다. 현재의 권력이 살아있는 권력으로 일컬어지고 물러난 권력이 죽은 권력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현재의 권력, 말하자면 살아있는 권력이 된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과거에 돈을 벌었던 사람의 지분마저도 까먹는다. 그래서 공정하게 생각하면 한달 10만원의 쓰임새를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상대에게 있는데도 그 생각을 하질 못한다. 돈의 현재 권력이 갖는 위력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 위력을 행사한다. 그렇게 위력이 헹사되면 어떤 행위, 가령 10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행위은 미리 상의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약을 받는다. 그것이 돈의 위력이다. 그 위력의 행사는 말에 밴다.
문학이 말을 지배할 때: “니가 그렇게 결정을 했어도 공자의 생활난이 닥치면 그 후원은 취소되는 거다. 생활이란 후원도 양보해야 할 정도로 무서운 거니까.”
문학이 지배하면 같은 상황에서 김수영이 소환된다. 돈의 지분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김수영의 시 제목이 소환되어 이 상황의 대화를 거든다. 그러면 상대의 행위, 즉 어느 단체에 후원금을 내겠다는 행위는 상의하고 허가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다만 생활이 어려워지면 그 후원은 얼마든지 취소될 수 있는 일로 고지가 된다. 문학이 지배하면 행위 자체가 제약되지 않는다.
나는 문학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싶었으나 돈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다. 그것도 함께 기록해 놓는다.
최숙재: 더 많은 얘기를 해보시지요.
포기 하지 마시궁.
지금껏 살아오신 것처럼.
나: 그냥 연금은 포기하고 저는 제가 버는 돈으로 살려구요. 실컷 연금으로 행복하시라고 하고 싶어요. ㅋㅋ
유용선: 동원 쌤, 그녀에겐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상의’가 포커스 같아요. 그녀 입장에서 “니 지분 35만원에서 10만원을 후원했으니 넌 25만원만 써라.” 할 순 없으니까요.
나: 그래서 저도 이의를 제기했지요. 그럼 너는 너가 하는 모든 후원을 나랑 상의하느냐구요. 길게 보면 모든 돈벌이는 서로 의존적이거든요. 아니더라구요. 이상하게 세상을 돈 문제로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슬프게두요. 제가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Park Charles Cheoru: 연금에 관한 얘기가 그렇게 나온 것은 노동생산성이 없어진 다음 몹시 제한적 자원을 운영하게 되므로 지금의 푼돈이 더 이상 푼돈이 아닐거라고 생각해서 나온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해를 풀어주세요. 죽는 날까지 난 연금을 손대지 않겠다거나 지금의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소리를 치시는 겁니다.
그런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오해는 타당하고도 몹시 멀리 내다본 시선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나: 이런 시각이 돈으로 세상을 보는 전형적인 또하나의 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는 또다른 시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겐 미래에 대비하여 현재를 착실하게 준비하는데 보내는 성실한 사람들이 미래의 불안을 끌어와 현재를 탕진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다른 시각의 사람 중 하나여서 내 문학을 안정된 생활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생활만 남고 문학은 없는 상황은 제게는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특수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싶네요.
Park Charles Cheoru: 네. 제가 너무 세속적이었네요. 죄송합니다.
이헌: 응원합니다 선생님 ㅋㅋㅋㅋ
나: 감사합니다. 가난하게 살아보겠습니다. ㅋㅋ
김계정: 우째요. 서로 맘이 상한듯 하네요. 서로의 포커스가 달라서 인듯요. 여자는 돈보다도 상의죠. 상의했음 흔쾌히 그러라 할수 있는문제죠. 존재감?
나: 나는 너의 연금에 나의 지분이 있으니까 상의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화가 나더라구요. 그 연금을 내가 펑펑 쓸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그 연금은 네 몫으로 하면 되겠냐고 했죠. 웃기는 듯요. 무슨 재벌의 재산 싸움 같아요. ㅋㅋ
김계정: ㅋㅋ 부부가 다 그케 살아요 화가 나서 그랬겠죠. 릴렉스 ~~
김영선: 그래도 아내분께 먼저 말씀을 하셨어야… 내 지분에서 1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그랬더라면 그녀도 흔쾌히 울 남편 멋져!!! 하셨을 것 같은데요ㅎ
나: 이 대화는 그렇게 진행되면 안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대화가 돈의 지배를 받는 거잖아요. 그렇게 대화해야 하는 세상이 바람직하지도 않구요. 내가 돈을 후원하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그래도 공자의 생활난이 닥치면 그 후원은 취소하고 일단 생활난부터 해소하기다로 나왔어야 하는 듯 싶어요. 그럼 대화가 돈이 아니라 문학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되죠. 최소한 글쓰는 사람이 있는 집안에서라도 그 정도 조심은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너무 열받아서 화가 잘 안풀리네요.
김영선: 말씀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단지 마음, 혹시 아내분께서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상의없이 결정하고 후에 통보 받았”을 때 받는 서운함, 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아내분도 글을 쓰시는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을 쓰시는 분께서 여자의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해는 더 많이 하실 것도 같고요.
나: 아주 당연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에서 돈의 권력이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 점을 지적하면 당사자가 돈벌려고 고생한 자신을 무시한다고 얘기합니다.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있는 자신의 태도가 말에 배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구요. 문학이나 예술이 모두 현상의 이면을 탐구하는데 바쳐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 때가 많아요. 어떤 사람에겐 그런 이유로 문학과 예술이 불편하기도 한 듯 하구요. ^^
김선희: 어찌 생각하면 상대편도 돈이야기가 아닌듯요. 서로의 존중은 이럴때 나오고 이럴 때 마음이 상하지요. 이해 하시는 결말 보시길.
나: 세상의 모든 부부 사이가 그렇듯이 이 싸움은 딱 한 번의 싸움이 아니예요. 결혼과 함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싸움이죠. 딱 한 번이라면 누가 못 참겠어요. 이 싸움이 힘든 것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싸우면서 둘이 계속 살고 있죠. 지독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선희: 나만 매 반복인줄 알았는데? ㅎㅎㅎ
갑자기 잉꼬부부의 비결이 궁금하고 닮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