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장터를 들여다보다 34만원에 나온 2013년 초반 기종의 맥북을 한 대 봤다. 메모리는 8기가였고, 내장 SSD는 256기가였다. 내가 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의 기기이다. 하지만 내게는 2015년 이전에 나온 맥이 필요했다. 연락을 해서 30만원에 흥정을 했고, 31만원에 타결을 봤다. 판매자가 옆동네에 살고 있어 밤 12시에 지하철역에서 만나 사갖고 왔다.
한물간 제품이지만 이 모델은 내게선 아주 큰일을 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afp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afp는 애플의 네트웍 프로토콜이다. 지금도 맥은 어느 맥이나 afp를 지원하지만 애플은 어느 순간부터 afp를 로컬 네트웍으로 제한해 버렸다. 옛날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인터넷만 물려있으면 어디서든 맥이 서로 접속하여 파일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나는 도쿄에 놀러가서 사진을 찍으면 집에 켜놓고 온 내 아이맥에 접속하여 저녁마다 집으로 사진 파일을 미리 전송했다. 때문에 따로 저장장치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냥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그야말로 맥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파일 공유 기능이 로컬 네트웍에서만 되고 인터넷에선 먹히질 않기 시작했다. 하긴 보안을 생각하면 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능이긴 했다. 그래도 나는 이 기능이 편했다.
애플의 맥은 어느 순간부터 처음 깔렸던 OS 버전 이전의 버전은 깔리지 않게 바뀌었다. 그러니까 OS의 업그레이드는 가능해도 첫 버전의 이전 버전으로는 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접속하여 파일 공유를 하려면 옛날 버전의 OS가 깔리는 맥이 필요하다. 나는 그 상한선을 2015년 모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아이맥이 2015년 모델인데 이 맥을 샀을 때 그 기능이 작동했었기 때문이다.
사갖고 온 2013년 모델을 살펴봤더니 시스템으로 모하비가 깔려 있다. 2018년에 나온 OS이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폰의 핫스팟을 켠 뒤에 다른 맥북과 연결하여 네트웍을 로컬이 아니라 인터넷 상태로 바꾸고 접속을 했다. 안된다. USB 스틱에 한해 전인 2017년에 나온 하이시에라를 담아 부팅 USB를 만들고 더 오래된 이 OS를 설치했다. 맥에선 옛날 OS를 설치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또 안된다. 두 단계 더 낮추어서 2015년에 나온 엘캐피탄을 깔기로 마음 먹었다. 이건 하이시에라처럼 쉽지가 않았다. 부팅 USB 만드는 명령이 조금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들었고, 결국은 깔았다. 접속했다. 된다. 시간이 새벽 세 시가 넘어가 있었다. 그래도 뿌듯한 마음에 잠 들었다.
다음 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엘캐피탄이 깔린 오래된, 그러나 어제산 맥북을 중심으로 기기들을 물리고 공유 설정을 했다. 보안에 신경을 안쓸 수는 없어서 공유기에서 포트포워딩을 하여 afp 포트 하나만 열었다. 아울러 afp 공유만 가능하게 하고 삼바 서버는 접속을 못하도록 끊어 버렸다. 맥이 아니면 파일 공유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내게는 2019년에 나온 성능 좋은 맥북이 있다. 나는 그 맥북을 들고 동네 대형마트의 햄버거 가게로 갔다. 한산했다. 자리 하나 꿰차고 앉아 매달 KT에서 주는 무료 와이파이 사용권을 이용해 인터넷에 연결하고 집안의 맥북과 접속했다. 집의 맥북에 물려놓은 모든 것들이 잡혔다. 쓰던 글을 열어보았다.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큰 불편없이 쓸 수 있었다.
미리 집안의 고양이 사진이 담긴 플래시 카드 하나를 갖고 갔다. 맥북에 물려 작업을 하고 작업이 끝난 뒤 집의 외장하드로 전송해 보았다. 450메가였는데 7분 정도 걸렸다. 아마도 회선 빠른 인터넷 환경이면 45초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이제 나는 세상 어디에 가도 마치 집안에 있는 듯이 작업할 수 있다. 나는 장비들 때문에 내가 집안에 묶여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었다. 구닥다리 컴퓨터 하나가 그 구속에서 나를 풀어주며 내게 자유를 주었다. 때로 31만원이 엄청난 것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30만원이 있다고 누구나 그 돈을 자유를 얻는데 쓰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적은 돈으로 자유를 얻어내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세상 어디를 떠돌아도 동시에 집에 있는 기묘한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