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을 하나 장만했다. 애플의 노트북이다. 내가 가장 처음 장만한 노트북은 파워북 160이었다. 화면이 흑백인 초기의 애플 노트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노트북으로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수많은 글이 이 노트북에서 완성되었다. 원래 이 노트북은 통신 기능이 없었는데 나는 모뎀을 달아서 이 노트북으로 통신을 했다. 전화선만 꽂으면 어디서든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메일 받는 것이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옛날에는 그것도 엄청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고장이 나지 않았으면 아직도 갖고 있었겠지만 결국은 고장이 나고 말았다. 요즘의 트랙패드가 아니라 트랙볼이란 것이 장착되어 있었던 고색창연한 모델이었다.
나의 두 번째 노트북은 애플의 맥북 2008년 모델이었다. 딸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준 입학 선물이었는데 나중에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이 맥북을 많이 사랑했다. 이 맥북은 아주 독특한 모델이었다. 버튼 하나 누르는 것으로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었고, 메모리와 내장 하드의 교체도 상당히 수월했다. 나는 돈이 생길 때마다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해주었고, 내장하드도 바꿔주었다. 그러다 딸이 새로운 맥북을 장만했을 때 딸에게 이 맥북을 양도받아 내장 하드를 SSD로 교체했다. 여전히 쓸만했다. 하지만 옛모델이라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음악 작업을 해보겠다고 이 맥북에 GarageBand를 깔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컴퓨터가 뻗어버렸다. 꺼놓았더니 다음 날 다시 깨어나기는 했다. 지금도 여전히 작동은 한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한 컴퓨터에 큰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맥북 2019년 모델을 하나 장만했다. 16인치 모델이다. 내가 처음 써보는 터치바와 터치 ID 모델이다. 그 얘기는 일단 로그인을 하고 나면 내 손가락 지문으로 패스워드 요구 작업을 대신할 수 있고, 음량의 조절을 손가락의 접촉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게 처음에는 거의 신세계처럼 느껴진다. 또 내가 처음 써보는 USB-c 모델이다. 주변 기기를 쓸 때 전송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나도 최신의 모델에 욕심이 있다. 하지만 최신의 모델은 아무리 싸게 구성해도 450만원 정도는 주어야 장만할 수 있었다. 과도한 가격은 손쉬운 포기를 부른다. 나는 2019년 모델과 타협했다. 145만원 들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벤추라가 깔리는 모델이다. 애플의 최신 OS이다. 우리 집에는 이제 이 최신의 OS를 쓸 수 있는 맥이 하나도 없었다. 그간의 추세로 보면 다음 버전의 OS까지는 이 맥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당연히 벤추라를 설치했다. 어찌나 인터페이스가 대대적으로 바뀌었는지 설정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몇 시간의 고투끝에 모든 설정을 거의 마무리지었다. 기분이 묘하다. 이러한 강력한 성능의 노트북은 내 생애 처음이다. 어디를 가도 끌어안고 함께 살 수 있는 동반자 하나를 구한 느낌이다. 이제 이 친구와 함께면 어디로 가든 두려움없이 세상을 떠돌 수 있을 것만 같다. 발열이 문제인 기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써보니 내 작업에선 발열이 심한 것 같지는 않다. 발열은 작업따라 다르다. 내 삶은 이제 컴퓨터에 죽고 못사는 인생이 되었다.
내 다음 목표는 클라우드 시스템의 구축이다. 어디서나 접속이 되는 나만의 저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 제공하는 저장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 자료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이용해 저장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저장 공간은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이건 좀 돈이 많이 든다. 그걸 만드는 날, 집은 저장장치의 거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나는 세상 어디에 있으나 집을 들락거릴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시대는 그게 가능하다. 내 친구 맥북이 나를 위해 아득한 거리도 마다 않고 어디에서나 내 집을 오가는 세상을 펼쳐진다. 일단 나는 언제 어디를 가든 마음이 이끌 때 집을 떠나도 된다고 나를 부추기는 친구를 하나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