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를 처음 본 것은 다낭의 바닷가에서 였다. 아침 산책길에 만났다. 아직 배의 이름을 모르던 때였다. 그 배는 내게 반달배가 되었다. 생긴 모습이 내게 연상시킨 것이 반달이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의 어부는 그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았다. 작은 배였지만 콩알만큼 작게 축소될 정도로 바다 멀리까지 나갔다. 나는 배가 달빛을 그물처럼 내려 물고기를 잡아오는 것이리라 상상했다. 그 배는 반달배였으니까.
나중에 그 배의 이름이 코코넛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코넛 나무의 줄기로 만든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 안내인은 그 배를 바구니배라고 불렀다. 조금 커다란 바구니와 흡사하기는 했다.
이제 어떤 베트남의 어부는 더이상 반달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는다. 대신 어부는 다른 어부들이 반달배에 태우고 온 한국의 관광객들 앞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었다. 반달배는 바다를 유영하는 대신 야자수가 좌우로 늘어선 강의 수로 한가운데서 한국의 트로트 <무조건>에 맞추어 어부의 춤에 찰떡 같이 호흡을 맞추었다.
우리를 태우고 나간 어부는 노를 저으며 연신 빨리빨리를 외쳤다. 하도 당황스러워 나는 천천히를 두세 차례 반복하는 것으로 그 빨리빨리에 제동을 걸어보려 했으나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빨리빨리는 이제 우리의 업보가 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어부는 더 이상 코코넛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대신 코코넛배와 노를 현란하게 돌리며 춤을 추고 그 춤으로 관광객들의 주머니에서 달러를 낚는다. 고기잡이는 이제 달러잡이로 변환되었다.
고기를 잡는 어부에게는 베트남의 바다가 그의 것이다. 달러를 낚으러 나온 어부에게는 달러가 든 지갑을 챙겨온 내가 그의 바다이다. 나는 베트남에 가서 코코넛 배를 타고 있는 동안 그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라는 바다는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는 바다가 바닥을 드러내도 베트남의 바다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낭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매일 아침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어부의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