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이 호텔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문화제에 함께 했다. 집회는 노동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곳의 세상은 그대로인 듯 하면서도 미세하게 바뀌어 있다.
우선 집회가 있는 날이면 목요일이 그냥 목요일이 아니다. 목요일은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집회가 있는 날이 된다. 일주일의 어느 하루를 가져다 어떤 특별한 이름 아래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목요일의 저녁이 해고노동자들의 집회 시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시간을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그들은 지나가는 동안 해고노동자의 집회 시간을 거쳐간다. 공간에 시간이 결합되어 시공간을 이룰 때 대개는 시간이 공간의 중력과 결합되지만 이곳에선 투쟁하는 노동자와 시공간이 하나가 된다. 집회에 참여하면 그 미세한 시공간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때로 어떤 시간은 참여를 통해서만 체감할 수 있다.
명동역 10번 출구는 평범한 지하철 출입구이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이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의 시간으로 바뀌듯이 이곳 또한 목요일이 되면 특별한 통로로 바뀐다. 지하철을 타고 온 집회 참가자들 상당수가 이 통로를 올라와 집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나누러 가는 길은 길마저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 길이 여러 사람의 걸음으로 반복되면 더더욱 특별해진다. 그러니 10번 출구의 계단에 연대의 세상으로 가는 계단이라 이름을 붙여도 괜찮을 것이다. 계단 하나에 마음을 다지면서 사람들은 이 출구를 올라 노동자의 집회에 함께 한다. 노동자의 집회가 평범한 통로를 특별한 길로 바꾸어 놓는다.
자주 집회가 밥으로 시작된다. 한끼의 식사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밥차, 바로 밥통이 집회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밥통의 차는 DHL과 혼동되곤 한다. 노란색의 색깔 때문이다. 그러나 DHL의 차가 집회 현장을 스쳐가는 대신 밥통의 차는 어김없이 노동자의 집회에서 길을 멈춘다. 그러고 나선 노동자의 저녁을 준비하고 밥으로 배를 채워 집회를 하는 노동자들의 힘이 되어 준다.
밥통의 메뉴는 매번 바뀐다. 어제의 메뉴 가운데는 감자전이 있었다. 부쳐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부친다. 부치는 손놀림에 어색함이 역력하다. 하지만 조금 있다 노동자 한 명이 나타나고 그러자 누군가가 그를 전전문가라고 불렀다. 그가 조리기구를 손에 잡자 전이 모양을 갖추고 빠른 속도로 익어가기 시작한다. 서툰 손길로라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이곳에 있고, 그 서툰 손길을 걱정마라며 건네 받는 전문 노동자가 또 이곳에 함께 있다.
이소선합창단이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 거의 항상 반주는 정효가 맡는다. 그의 앞에 건반이 준비된다. 그가 건반 앞에 앉자 건반은 그를 가운데 두고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날개처럼 좌우로 펼쳐진다. 이제 그의 연주는 그냥 연주가 아니다. 그의 연주는 날개를 펴고 새처럼 날아오른다. 그의 반주로 이곳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는 날개를 가진 새의 비상이 된다.
이소선합창단의 노래는 소프라노 최선이의 <거리>로 시작되었다. 슬픈 노래이다. 마치 노동자들이 서 있는 이곳 명동거리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노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보지 마라”고 했다.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 “헐벗은 나무”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성한 나무의 계절도 오긴 올 것이다. 그러나 노래는 “무성한 나무들은 등을 돌린다”고 했다. 나무마저 등을 돌리는 세상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 이땅의 노동자들이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워갈 때 나무마저도 그들에게 무심한 느낌이었던 것이리라. 삶이 눈물일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눈물은 빛난다.” 그리고 그 눈물은 모여 강을 이룬다. 눈물이 강을 이루면 이제 지나는 누구나 그 발에 강물을 조금씩 묻혀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래는 쫓겨난 해고노동자들의 설움이 이 거리에서 강을 이룰 것이나 그때쯤 이곳을 지나는 세상 모두가 그 걸음끝에 강물을 적셔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의 발밑으로 강물 소리가 들리는 거리였다.
합창단이 두번 째 부른 노래는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 였다. 노래는 니카라과의 노래지만 만국의 노동자가 하나여서 어떤 노래는 주인이 따로 없다. 노래는 노동자의 “새 세상”을 노래한다. “우리가 지은 밥과 만든 옷들과 우리가 쌓은 벽돌 모두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기쁨과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노래는 밝고 경쾌하게 흐른다. 설움의 눈물이 흐르던 거리가 잠시 즐거워진다.
합창단의 세번 째 노래는 다시 가라 앉았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이 불고 “어머님의 눈물” 사무쳐 오는 세상이다. 하지만 노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강물 저어” 가겠다고 했다. 아마도 오늘 그 강은 눈물로 이룬 거리의 강일 것이다. 때로 우리의 눈물이 강을 이뤄 우리의 길을 연다.
앵콜이 나왔다. 합창단은 앵콜을 <민중의 노래>로 받았다. 이제 노래는 세상에 대해 외친다. “너는 듣고 있는가”고. 그리고 “모두 함께 싸우자”고 세상에 대해 손을 내민다. 지나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지나갔다. 강물에 젖은 자들은 눈물이 이룬 강을 지날 때 강물 소리에 박수로 응답한다.
집회가 마무리될 때 모두가 함께 <파업가>를 불렀다.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소선합창단도 마지막 노래에 함께 했다.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의 세상이 그 자리에서 열린다. 그건 분명 다른 세상이다. 목요일마다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호텔의 해고노동자들이 여는 새 세상이다. 그들이 내미는 손에 손을 내주는 것으로 잠시 그 세상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