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지탱하는 잎 — 유계영의 시 「태풍 클럽」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2월 20일 서울 잠실 한강변에서
대왕참나무

시인 유계영은 그의 시 「태풍 클럽」에서 “대합실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간판과 지붕이/새처럼 날아가고 개와 돼지들이/국경을 넘고”라고 말한다. 엄청난 태풍이 지나간 것이다. 나무가 몸서리를 칠 정도의 태풍이었다. 그 태풍 끝에 시인이 본 것이 있다. 바로 나무에 남아있는 잎사귀 한 장이었다. 그 잎사귀 한 장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잎사귀 한 장이
나무의 몸서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것을 봤어요
끝에서 끝으로
불씨가 옮겨붙듯이
잎사귀 한 장이
나무를 지탱하는 것을요
—유계영, 「태풍 클럽」 부분

시인의 시각 속에선 일반적 시각이 뒤집혀 있다. 잎사귀가 나무를 지탱하는 것을 봤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나무가 잎사귀를 지탱한다. 왜 시인의 시각은 뒤집힌 것일까. 그것은 나무보다 잎이 겪었을 태풍의 경험이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를 땅속에 내린 나무는 기댈 구석이 있지만 잎은 그저 나무를 붙잡은 잎자루의 힘 이외에는 아무 것도 기댈 것이 없이 태풍을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나무에 비하면 잎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서 태풍을 가장 크게 감당한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뭇잎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이 시인에게 “잎사귀 한 장이/나무를 지탱하는” 세상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시의 세상에선 크고 든든한 나무가 태풍을 이겨내며 잎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잎들이 그 바람을 이겨낼 때 나무가 지탱이 된다.
나는 그것을 시인에게 열린 새로운 세상이라 생각한다. 시인에겐 그렇게 새세상이 열린다. 바로 태풍 끝에서도 떨어지지 않은 “잎사귀 한 장이/나무를 지탱하는” 세상이다. 그렇게 시인에게 새세상이 열리면 그 세상은 시를 읽은 사람의 세상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를 읽고 난 뒤, 나는 바람이 몹시 불고 날씨가 추운 2월의 한강변을 걸었다. 거의 대부분의 나무는 이미 오래 전 가을에 잎을 모두 털어냈다. 겨울은 나무가 잎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홀로 지탱해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 겨울에도 나무 몇 그루에 마른 잎들이 무성한채 그대로이다. 모두 대왕참나무이다. 때로 어떤 나무의 겨울을 지탱하기 위해 이 겨울에도 수많은 잎들이 바람과 추위를 견딘다. 시가 한 잎으로 세상을 열면 그 세상이 수많은 잎으로 다시 열리기도 한다.
(2023년 2월 20일)
(인용한 시는 유계영 외,『영원과 하루』, 타이피스트, 2023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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