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사회가 내몬 죽음 – 영화 <다음 소희>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2월 20일 롯데타워 롯데시네마 16관에서
영화 <다음 소희>의 엔딩 크래딧

•영화 <다음 소희>를 봤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현장 실습을 다룬 영화이다.

•오전 11시에 롯데 시네마에서 봤다. 정작 영화속 소희는 이 영화를 볼 수 없겠다 싶었다. 세상의 모든 소희가 일할 시간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하루 딱 한 번의 상영이었다.

•영화는 현실과 허구로 나뉘어 있다. 고등학교 현장 실습생인 소희가 저수지에 몸을 던져 자살할 때까지가 현실이고 그의 죽음을 쫓는 경찰 유진은 허구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허구를 통해서만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실이 현실을 드러내지 못할 때 그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 문제화하는 것을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허구가 맡는다.

•<다음 소희>라는 영화의 제목은 의미가 깊다. 영화 속 소희가 죽었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또다른 소희의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로 들리기도 하고 또 또다른 소희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말하자면 다음 소희는 다음 소희가 없어야 한다는 뜻의 제목이 된다. 나는 다음 소희를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었다. 방법은 경찰 유진의 목소리를 빌어 여러 곳에서 나온다. 그것이 소희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소희의 춤이다. 영화는 묻는다. 소희에게 춤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의 시작 때 소희는 춤을 추다 계속 쓰러진다. 쓰러지는 데도 소희는 계속 춤을 춘다. 소희가 쓰러지지 않고 완성한 춤은 죽고난 그가 남긴 스마트폰 속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공개된다. 춤은 소희에게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그는 한번 쓰러지는 것으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었다. 노동은 춤이 아니었다.

•영화는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경쟁이란 것을 알려준다. 사회는 그 경쟁을 수치화하여 사람들의 줄을 세운다. 영화 속에서 그 경쟁은 소희가 현장실습을 나간 통신회사를 통해 나타난다. 통신회사는 인터넷을 해지하려는 사람에게 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해지를 막는 비율로 콜센터 직원을 경쟁으로 내몬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그 경쟁이다. 경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을 파괴하는데도 그 경쟁의 앞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쟁은 곳곳에 있다. 취업률로 줄을 서야 하는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이다. 그 경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속에선 그들이 모두 죽는다. 그것도 자살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가 묻는다. 그것이 자살일까. 우리의 경쟁사회가 죽인 것이 아닌가.

•영화 속에선 고용자측의 항변이 나온다. 힘들면 관두지 왜 자살을 해서 회사를 어렵게 만드냐는 것이다. 항변은 있고, 이 항변에 대한 답은 영화 속에 없다. 사람이 너무 힘들어지면 관둘 생각도 못한다. 이를 심리적으로는 너무 힘들면 힘들다는 것도 느끼질 못한다고 말한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가면 과로를 과로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죽은 소희가 그 상태이다. 과로는 일을 하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힘든 것도 모르고 죽는 것이다. 때로 영화 속 기업측의 항변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야 할 때도 있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었다. 경쟁도 살인이다. 노동자들이 경쟁없이 일하게 하라. 또 일한대로 공정하게 임금을 지급하라. 그러면 소희는 죽지 않는다. 내가 들은 <다음 소희>의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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