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쓰는 노동자의 세상 – 이소선합창단의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 지지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4월 13일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 지지공연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4월 13일 목요일 명동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문화제에 함께 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이 날의 집회는 세종호텔 앞에서 시작되지 않고 중구청 앞에서 시작되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강제 철거한 중구청의 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먼저 가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중구청 앞에 모여 구청이 해야할 일이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농성 천막을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부당 해고없이 살아갈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먼저라는 점을 환기시켰다. 부당 해고가 없으면 농성 천막도 없다.
경찰은 집회 도중 자꾸 소음 측정치를 들이밀며 스피커의 볼륨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의 발언은 소음이 아니라 구청 행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노동자의 농성이 왜 정당한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말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말을 소음과 혼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작은 소리로 지껄이는 말도 개소리나 다름없는 소음이 될 수 있음을. 윤석열이 주 69시간의 노동을 말할 때 바로 그런 소리가 개소리에 다름없는 소음이다. 막아야 할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소음이다. 경찰은 막아야할 소음은 막질 않고 세상 모두가 귀기울여 듣게 더욱 크게 전해야할 노동자들의 말은 막았다. 소음이 득세하고 말이 억압받는 세상이었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전했다.
이소선합창단은 세종호텔 앞에 모여 중구청에서 집회를 하고 오는 노동자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노래로 그들과 함께 했다.
합창단의 첫순서는 소프라노 최선이의 노래 <민주>였다. 노래는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로 시작되었다. 노래가 그렇게 말할 때 노래의 앞에 중구청을 찾아가 집회를 열고 함께 하는 중구라면서 그 함께 속에 왜 노동자는 없는가를 물었던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노래는 그들에게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햇살이었다.
노래는 또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고 했다. 노래가 그렇게 말할 때 노래의 앞에는 부당 해고에 맞서 몇년째 원직 복직을 외치며 싸우고 있는 세종호텔의 해고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자본이 이윤에 대한 탐욕으로 한 사람의 삶이 된 직장의 의미를 해고로 뭉갤 때 그들은 싸웠고 노래는 그들이 “스러지는 불길에 새불 부르고 언덕에 온 고을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랫동안 싸움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또 많은 이들의 연대도 없었을 것이다. 노래는 우리 앞에 앉은 이들이 모두 불길이라 했다.
노래는 계속된다. 계속되는 노래는 이번에는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고 했다. 노래가 그렇게 말할 때 노래의 앞에 바람처럼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노동탄압을 중단하라 외치다 온 노동자들이 있었다. 노래는 그들이 ‘꽃바람’이자 ‘아우성’이라 했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바람이란 뜻으로 들렸으며, 목소리로 일어서는 수많은 이들의 함성이란 뜻으로 들렸다.
노래는 때로 노래로 세상을 새로 쓴다. 노래가 새로 쓴 세상에선 노동자가 바람이자 불꽃이며 햇살이다. 노래의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뜻이 깊다. 바로 노동자가 바람이자 불꽃이며 햇살로 대접받는 세상이 비로소 민주 세상이란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합창단이 모두 목소리를 모아 부른 두 번째 노래는 <대결>이었다. 대결의 끝에서 합창단의 노래는 단호하게 “힘찬 투쟁”과 “민주 노조 만만세”를 외쳤다. 나는 그 민주 노조를 민주가 곧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이 곧 민주이며 그 민주는 힘찬 싸움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노래의 앞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 노래는 <우리라는 꿈>이었다. 노래는 “하루치 노동”이 “하루치 눈물”이 되는 세상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땅의 노동자들이다. 노래의 앞에 앉아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는 그들이 “하루치 노동을 벗삼아” ‘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 했다. “서로 맞잡아 힘이 되는 연대”로 저기를 꿈꾸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노래의 앞에 앉아 있었다.
앵콜이 나왔다. 이소선합창단이 앵콜곡으로 부른 노래는 <다시, 또 다시>이다. 노래는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노래가 그렇게 말할 때 노래의 앞에 중구청이 농성 천막을 강제 철거해도 다시 또 천막을 치고 일어선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쳐놓은 작은 텐트 하나에는 디럭스룸이라는 표지가 유머스럽게 붙어 있기까지 했다. 분노하면서도 그들에게 웃음을 빼앗기지 않은 노동자였다. 노래는 “다시 또 다시 일어서”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승리를 예언했다.
노동자의 말을 들은 시간이었다. 소음이 판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야할 말이었다. 노래가 있었다. 앞에 앉은 노동자의 이름으로 세상을 새로 쓰고 있는 노래였다. 바람과 햇살, 불꽃으로 일어나 서로 연대하며 꺾이지 않는 싸움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노동자들이 그 노래 앞에 있었다. 잠시 민주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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