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추모문화제에 함께 했다. 합창단이 이 집회에 함께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노동자 양회동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하여 세상을 뜬 것이 벌써 17일째라고 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러한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그 억울함을 헤아리고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부친 검찰 권력의 부당함을 파헤져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 할 것이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에는 왜곡된 보도로 이 죽음을 짓밟으려 드는 세력들이 있다. 조선일보를 앞세운 보수 언론들이다. 그들은 두려운 것이리라. 이 죽음이 사람들의 가슴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영원한 삶으로 살아나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두려운 일일 것이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가혹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모여서 죽은 그를 그가 바꾸려고 한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다시 살려내려 한다. 이소선합창단은 그러한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합창단은 모두 세 곡의 노래를 불렀다. 첫 곡은 <잘가오 그대> 였다. 노래는 “잘가오 그대”라 말하며 죽은 이를 보내면서도 “이 어둠은 오래지 않으리”라 덧붙이고 “우린 눈부신 아침을 맞으리”라 꿈꾼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지금 그 어둠이 한 생명을 억울함 속에 죽음으로 몰아넣은 검찰 권력이란 것을. 그리고 우리가 맞은 눈부신 아침이 그러한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노동자가 이땅의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맞는 아침이란 것을. 그 아침이 오면 “세상 모든 슬픔”은 물론이고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대의 절망 그대의 아픔”도 비로소 그 “아침에 모두 다 잊”게 된다. 아마도 죽음이 우리의 삶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날일 것이다.
합창단의 두 번째 노래는 <이름>이었다. 노래가 “이름 하나 가슴에 있네”라고 한 그 이름은 바로 “노동자”이다. 양회동은 바로 그 노래의 이름, 노동자였다. 노래는 그 이름이 우리의 세상에서 “때로는 낙인되어 불타”며 우리의 아픔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때로는 희망되어 적시는” 이름이 되어 우리 곁에 함께 해왔다고 전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미래의 이름”이란 것이다. 노동자가 존중 받는 이름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비로소 미래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합창단이 “누구의 이름도 아닌 모두의 이름인 노동자”의 세상을 노래할 때 그 꿈의 주인공들이 노래의 앞에 있었다.
세 번째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널리 알려진 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노래는 장중하게 그 시작을 열었다. 먼길을 가야 하는 걸음이라 그렇다는 듯이 노래는 천천히 음을 높여간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노래는 마치 이제 사람들의 힘을 모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도 된 듯 빠르기를 달리한다. 그렇게 곡의 빠르기가 바뀌자 합창단 단원들의 손이 모두 주먹을 쥐고 있었고, 노래를 듣던 이들도 모두 주먹을 쥐었다. 노래의 마지막은 “투쟁!”이란 구호였다. 노래는 그동안 부른 노래를 그 구호 속에 모두 모았다.
생명이 더 이상 부당한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죽음이 영원한 삶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였고, 합창단은 세 곡의 노래를 부른 끝에 “투쟁”이라 외쳤다. 그 구호 속에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이 뜨겁게 모여있었다. 때로 노래는 투쟁이라 외치는 구호 속에 마음을 뜨겁게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