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은 항상 내 기억 속에선
그 무성한 잎이 전부입니다.
감고 올라갈 조금의 빈틈만 있으면
칡은 그 줄기를 들이밀고는 잎을 끌고 어디든지 올라가
그 곳을 무성한 잎으로 뒤덮어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칡을 떠올릴 때면
그 무성한 잎이 이제는 기억마저 헤치고 머리 바깥으로 삐져나올 듯한
공포스런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칡의 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칡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칡에도 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꽃은 한눈에 눈길을 끌어당길 정도로 예뻤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더니 꽃뿐만 아니라 열매도 맺는다는 군요.
8월이 바로 꽃피는 시기이고
9~10월이 열매의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칡은 매년 꽃을 피우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곁에 심어두고 가까이 하는 식물이 아니다 보니
꽃필 때 운좋게 그 곁을 지나치지 않으면 꽃을 보기 어려웠던 것이겠지요.
칡을 집안에 심어두고 가꾸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가까이 두고 키우는 식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칡은 항상 그 무성한 줄기와 잎으로
제 기억을 단단히 옭아매면서 나를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올해 늦었지만 꽃을 만난 것은 참 다행입니다.
그 꽃은 그냥 꽃이 아니라
칡에 관해선 줄기와 잎들만 무성하던 내 기억의 굴레까지 벗겨주었으니까요.
아마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떤 사람이 화사한 꽃을 피웠는데도
그 꽃을 보지 못하고 옛기억에 사로잡혀
과거에 얽매인 눈을 버리지 못하곤 한다는 얘기죠.
가끔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 만남이 참 좋습니다.
얽매인 과거가 없거든요.
올해 칡의 꽃을 만났듯이
사람들을 만날 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그 사람이 꽃피워낸 오늘의 아름다움을 자주 마주하고 싶습니다.
4 thoughts on “칡의 꽃”
전 초딩 3학년이예요.
너무 글씨가 많아서 조금 지루했지만,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어서 참 좋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읽기에는 많이 지루했을 텐데…
읽어줘서 고마워요.
그 날 김포 가셔서 어여쁜 칡꽃 보셨군요.
저도 처음 보아요.
이 곳은 오늘의 아름다움이 매일 꽃 피어나네요.
훗, 그러고 보니 우리 만나던 그날이었군요.
그날은 연꽃만 본게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