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좋았던 오후

8월 6일엔 아침 나절에만 해도 날이 별로 좋질 않았다.
하늘은 지뿌두둥한 잿빛이었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손에선 간간히 우산이 눈에 띄었다.
언제 내릴지 모를 비소식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리고 천호동 사거리에서 버스를 내려 천호대교로 들어서고
한강이 눈에 잡히는 거리까지 걸어갔을 때,
이미 시간은 오후로 접어든지 한참 뒤였지만
하늘의 빛깔은 오전의 잿빛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하늘이 잿빛이면 세상 모든 것들의 색깔에 잿빛이 덧입혀져 그 느낌이 칙칙해진다.
한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잠실쪽으로 걸어내려가며
시선을 주로 길가의 코스모스에 맞추었다.
아직 코스모스는 많이 피질 않았다.
많이 피면 꽃보다 잎이 더 무성한데도
오히려 꽃이 더 무성해 보인다.
그것보면 눈길을 끌어 무성함을 가장하는 꽃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아직은 잎의 초록이 더 크게 범람해 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지상으로 두고 내려가는데
올림픽대교에 이르렀을 때쯤 하늘이 약간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름의 저편은 푸른 하늘이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 잿빛을 걷어내고 푸른 빛을 가득채웠다.
난 그때부터 지상으로 낮추었던 시선을 하늘로 높이 두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올림픽대교 남단.
길 하나는 돌면서 다리를 타고 들어가 강건너로 가고,
또다른 길 하나는 돌면서 다리를 타고 나와 올림픽대로로 들어선다.
다리는 두껍게 하늘을 가리고 있지만
빈틈이 많아 하늘을 다 가리진 못한다.
곡선은 날렵해도 몸매가 육중해서 움직이질 못한다.
차라리 날렵하기로는 내가 더 날렵하다.
난 매일 다니는 길에서 내 마음대로 시선을 피해 그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이 그 사이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며 길을 가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렇다고 다리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이
항상 조심스러운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늘이 다리의 사이로 쐐기를 박기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한번의 쐐기로도 모자라
하늘은 거듭 단호하게 못을 박는다.
다리는 아무 말없이 하늘의 그 단호함을 받아들인다.

Photo by Kim Dong Won

강변의 둑에선 초록이 넘실대고,
물은 황토빛이다.
그 너머로 얇게 한층을 내주며 회색빛 도시를 허용한 풍경은
그 위로는 푸르고 하얀 하늘을 넓게 펼쳐들었다.
그러나 지상의 풍경은 잿빛 하늘은 무거워해도
푸른 하늘과 흰구름은 무거워하는 법이 없다.
하늘이 가벼워지면 지상은 밝아진다.

Photo by Kim Dong Won

강건너 테크노마트 건물이
오늘따라 날씬해 보인다.
하늘이 파란 얼굴을 내밀자
좀더 가까이 그 하늘을 호흡하려 발돋움을 한 것일까.
또 그 푸른 하늘을 호흡하겠다고
저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라간 누군가가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강건너를 바라보며
강변을 따라 걷다가 하늘에 시선을 빼앗긴채
걸음을 멈춘 누군가가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하늘에 잠자리떼가 아주 많았다.
잠자리의 그 자유로운 비행이 부러웠던지
구름이 비행기 모양을 만들더니
부~웅 나르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구름이 도로의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원래 도로의 가슴은 뻥뚫린 느낌이지만
구름이 채워준 가슴은 그 느낌이 충만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잔디밭의 초록빛 너머로 천호대교가 보인다.
천호대교가 두 다리의 고른 보폭으로 한강을 건너고
그 뒤론 아차산이 누워있다.
길게 산자락을 뻗고 누운 아차산 위로
구름이 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만
아마도 구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내가 구름까지 훑어간 풍경과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겠지?
아차산이 구름과 눈을 맞추고 누워있고,
그 눈길을 슬쩍 피해 멀리 천호대교 쪽으로 시선을 보내보면
천호대교는 물길이 얼마나 깊나 가늠하며
다리를 한강물 속으로 담그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아래쪽의 잔디밭은 반듯하게 구획을 지어 파놓은
초록빛 호수 같을 지도 몰라.
혹시 우리들이 구름이 되고 싶은 것은
구름에서 세상을 보았을 때의 그 다른 느낌이 궁금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하늘에 저녁빛이 스민다.
내가 여지껏 경험한 바로는 하루중 저녁빛이 가장 곱다.
새벽빛은 새벽을 쫓아내는 느낌인데
저녁빛은 저녁을 무릎이나 가슴에 눕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느낌이 따뜻하다.
멀리 워커힐쪽으로 하늘의 구름이 완만하게 둥근 춤사위를 그리며,
서서히 저녁빛에 물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광진교 아래쪽으로 눈을 돌렸더니
구름이 지나가다 배가 고팠는지
저녁해를 꿀꺽 삼키려는 중이다.
도대체 어쩌려구 저러지.
뜨겁다고 토해낸 뒤,
이마로 들이받으며 뜨거움을 달랠 벽도 없구만, 하늘엔.

4 thoughts on “구름이 좋았던 오후

    1. 오후 두시쯤 한강에 도착해서 천천히 걷다가 다리밑에 앉아서 쉬다가 하면서 여섯시반까지 있었던 것 같아요.
      구름이 예상외로 금방 모양을 바꾸곤 하더군요.

  1. 마지막 사진은 마치 성난 들소가 들이 받을 듯한 형상이군요.
    올림픽 대교위의 비행기 모양 구름사진도 재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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