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눈이 내리는 날 강원도 속초에 간 적이 있었다.
원래 버스는 미시령을 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날 눈내린 미시령은 어떤 차의 보행도 허용치 않았다.
버스는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에서 체인을 감더니 진부령을 넘어 속초로 갔다.
나는 그때 차창 밖에 어른거리던 그 희디힌 강원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이후로 나는 대설주의보 소식만 들으면 강원도로 나서게 되었다.
1월 31일, 나는 강원도의 대설주의보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 다음 날인 2월 1일에
백담사를 행선지로 삼고 서울을 출발한 것은 아침 8시였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내리면 그날의 행선지는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눈이 내린 강원도는 어느 곳이나 한 폭의 그림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백담사를 갔다기 보다
그날 나는 눈내린 강원도를 간 것이었다.
백담사로 향하던 차를 처음 멈춘 곳은
홍천의 외삼포리였다.
눈은 마을의 길 위에서 인적을 끊어버리고
대신 흰빛 고요로 세상을 덮은 뒤
한폭의 그림으로 마을을 펼쳐들고 있었다.
분명 평상시엔 논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숲이었겠지만
눈이 내린 날 그곳을 갔다 나온 나는 마치
흰 바다를 건너 섬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속초에 갈 때면
항상 화양강 랜드라는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가게 된다.
휴게소의 한켠에 트럭 세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평상시의 앞유리 대신
멋진 흰빛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차를 가지고 눈내린 강원도를 갈 때는
가다서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차창밖의 풍경이 잡아끄는
그 강력한 자장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들어간 한 마을에선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오늘 온통 눈으로 치장을 하고는 나를 맞아주었다.
나무가지 사이에 높다랗게 얹힌 까치집에 눈에 보였다.
까치는 오늘 아침 일찍 제 집을 파고든
눈을 치우긴 치웠을까.
오늘 누군가의 무덤 위에도 예외없이 눈이 내렸다.
오늘 눈은 그저 무덤의 윤곽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풀들만 남겨두고
무덤을 하얗고 푸근하게 덮어버렸다.
나무는 위로 자라고 집도 위로 솟는다.
눈은 나무가지 위로, 혹은 지붕 위로 내린다.
둘이 만나면 그냥 사람사는 강원도의 어디나 풍경이 된다.
눈의 풍경은 위로 자라거나 솟는 것들이
아래로 내리는 눈과 손을 맞잡는 즐거운 만남이다.
빈듯 보이는 어느 집의 마루에선
가을부터 그 자리에서 몸을 말렸을 옥수수들이
오늘 세상의 눈을 바라보며 노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백담사가 가까워오면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이 눈내린 풍경을 지나칠 때
그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다.
요즘의 버스는 창문을 열 수가 없어
사진을 찍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번 여행은 차를 갖고 갔기 때문에
차창을 열고 지나는 풍경을 얼마든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은 그때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다.
눈이 내린 날 강원도의 어디나 풍경이 된다는 것은
바로 산중턱이 빚어내는 이런 풍경을 두고 말함이다.
눈 내린 날 강원도에선
차창으로 이런 풍경이 내내 함께 달린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하자 먼저 장승이 나를 맞아준다.
눈이 내린 날의 흥겨움 때문인지
장승이 내게 장난을 치고 싶었나 보다.
장승은 내게 하얀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어떤 단지는 엉덩이를 쳐들고
그곳에 눈을 받아두고,
어떤 단지는 입을 시커멓게 벌리고
내리는 눈을 다 받아 마신다.
눈오는 날은 이 여인네에겐 잠깐 흰숄을 걸치는 호사가 주어진다.
표정을 보니 이번에 구한 숄이 아주 마음에 드나보다.
오늘 지붕엔 여느 날과 달리
눈이 담기고, 또 그 위에 하늘이 담겼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두번째 다리의 난간에선
눈이 제 몸을 스스로 녹이고 늘어뜨려
목걸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누구의 목에 걸어주려 한 것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남의 사랑을 너무 깊이 캐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하여
짐짓 모른체 그냥 지나쳤다.
7 thoughts on “눈내린 강원도를 가다 – 백담사를 다녀오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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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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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삼!!
즐건 2월^^ / 정말 눈 사진에 눈이 시원~해지네요
바다도 보고 오실 건가요….궁금..
눈오시는 바다 가 궁금 하거든요..하긴 지금은 눈이 그쳤다지요 미끄러운 길 운전 조심 하시고 재충전 잘하세요^^
바다는 못봤어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올라와 버렸죠.
하지만 백담계곡 사진이 남아있으니 그걸로 대신할 수 있을 거예요.
내일 올리려구요.
좋으셨겠어요.무지 무지 부럽네요.^^
어제랑 오늘아침 유난히 봄기운이 가득해서 항상 지나는 동네 돌담집을 올려다보았어요.
그집에 매화나무가 돌담을 넘어서 피곤하는데 벌써 물오르고 있더라구요. 날만 따뜻하면 금새 필것같아요.
이제 더이상 눈은 안오겠구나..생각하니 또다시 눈이 보고싶어지더군요. 실컷 보고갈게요.^^
이런 눈풍경을 볼 수 있는 건 눈이 그치고 한 두세 시간 정도에 불과해요.
그날의 기온에 관계없이 눈이 그치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의 눈이 다 떨어져 버려 사실 눈이 왔다고 해도 멋진 눈풍경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더라구요.
지금까지 두 번 본 것 같습니다.
그때는 보기만 하고. 이번에는 운좋게 사진까지 찍고.
그녀가 운전을 해준 덕택이었죠.
꼭 가야지 하면서도 못가본 백담사… 사진도 감동이지만, 풍경과 만난 글들이 한 편의 詩네요. ~^^
무슨 겸연쩍게 그런 말씀을. 오늘 재훈씨의 <결별의 노래>를 읽으면서 백담 계곡 사진 올릴 때 써먹어야지 생각했죠. 역시 시인은 놀랍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시의 첫구절좀 인용해도 되는 거죠?
에고~~영광입니다~^^.. 좋은 사진을 우울하게 만들진 말아야 할텐데..~감사드리며, 오늘 무척 춥다던데, 따뜻하고 복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