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백담계곡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잦은 계절은
가을이 아닌가 싶다.
그때면 백담사까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셔틀버스는
하루종일 분주하기 이를데 없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지루하도록 길게 늘어선다.
그때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가장 큰 힘은
계곡을 불태울 듯한 설악의 가을 단풍이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백담계곡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며
셔틀버스도 운행을 중지한다.
그때부터 백담계곡의 나무들은 이파리를 모두 비워낸채 겨울을 나지만
그곳에 눈발이 날리면 그 빈자리가 갑자기 하얗게 채워진다.
매표소로부터 꼬박 6km를 걸어 백담사에 닿고
또 그 길을 그대로 걸어나오며 흰눈에 묻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인 이재훈이 “흰 눈을 만나기 위해/폭염을 견디었는지 모른다”고 노래했던
어느 시의 시구절이
마치 이곳의 눈을 노래하기 위해 예비해둔 것인양 착각마저 든다.
1월 31일부터 대설주의보 소식이 이틀이나 이어지며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나는 2월 1일에 아침 일찍 백담사로 나섰다.
백담계곡은 앙상한 나무 가지로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 눈으로 눈이 시리게 채워져 있었다.
백담계곡에선 초입부터 자꾸
걸음이 그 호흡을 멈춘다.
눈이 내리면 걸음의 호흡은
더더욱 자주 끊긴다.
눈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눈과 바위에
오직 흰색만으로 그 윤곽을 따라 채색을 시작하며
그러면 누구나 그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그 순간 걸음의 호흡은 멈추고
눈의 호흡이 시작된다.
그 여린 가지의 어디에 발붙일 자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눈은 오늘 그 옹색한 자리를 마다않고
어느 가지 위에서나 빠짐없이 걸음을 멈춘다.
아마도 눈은 겨울나무의 그 앙상함이 안스러워
가지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눈의 느낌이 포근하고 따뜻한 것은
그것의 겉모습이 솜털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등을 부빌 자리도 없는 듯한 앙상한 삶을 스칠 때
그 앙상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가지 끝에 앉아 오늘 눈꽃으로 피었다.
하늘은 파란색, 구름은 흰색.
하늘은 바다를 지날 때면
제 색을 내려보내 바다를 파랗게 물들이지만
오늘은 백담계곡을 지나며
구름을 내려보내
산을 하얗게 물들였다.
백담사 스님들께서 산책나온 길을 중간쯤에서 접어
다시 절로 향하신다.
길가의 바위와 나무들이 조용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음을 닦는 다리, 수심교의 건너 편에 백담사가 있다.
마음을 깨끗이 닦으면
마음은 그때부터 어떤 채색의 풍경이 되는 것일까.
수심교의 건너 편에서 백담사가 말없이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만해 한용운의 뒤로
붉은 열매가 가을에 거두었을 제 빛을 그대로 간직한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한용운의 앞으로 세상이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붉은 열정으로 추운 겨울 세상을 하얗고 포근하게 덮어주고 싶었던 것이
그의 안타까운 꿈이 아니었을까.
오늘 그의 눈이 유난히 슬퍼보였다.
아직도 도닥이고 위로해 주어야할 춥고 배고픈 삶이 많기 때문이리라.
눈이 봉당의 턱밑까지 밀려들었다.
지붕은 처마끝에서 낙숫물을 뚝뚝 떨어뜨려
하얀 눈밭 위에 퐁퐁퐁 작은 우물을 팠다.
갑자기 마당에 하얀 우물이 줄을 이었다.
누군가 돌 하나에
소망을 담고, 사랑을 담고,
또 꿈을 담았다.
그 소망과 사랑, 그리고 꿈이
오늘 하얀 눈밭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그 소망과 사랑, 그리고 꿈을
빌어주고 있었다.
2월의 눈 내린 백담계곡에서 듣는 물소리는
그냥 물소리가 아니라 봄이 오는 소리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아니면 가을이나
나는 항상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그 점은 겨울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들어갈 때 하늘은 잿빛이었다.
나올 때 하늘은 잿빛을 걷고
푸른 화폭에 흰구름을 펼쳐들었다.
나는 다시 이곳에서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은 많은 것을 갖고 있다.
넓고 푸른 화폭과 구름이 그곳에 있으며,
또 풍성한 빛이 그곳에 있다.
잔뜩 덧칠한 구름이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했는지
하늘은 그 한가운데를 찢어
우르르 빛을 백담계곡으로 쏟아냈다.
처음엔 하늘이 구름을 내려보내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는데
조금 지나자 눈덮인 산이 구름을 피워올려
하늘을 하얗게 물들여갔다.
6 thoughts on “백담계곡에 눈이 내리다 – 백담사를 다녀오며 2”
오늘이 입춘 이라는데요^^
지금 두분 바다 보고 계시려나…
_Π____
/_____/~\.◎.
|田田|門| ”
♣♧♣♧♣♧♣♧
☞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의 기운을 받아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한 주말 되세요♣♧~
태백산 꼭대기에서 눈꽃(상고대)에 취했다가 왔어요.
바람 정말 춥더군요.
장갑을 잠시라도 벗으면 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
사진은 내일쯤.
전 김동원님이 참 부러워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글도 잘쓰고 더군다나 사진까지 잘 찍으시고..
그리고 부부가 함께 다닐 수 있는 그런 여유러움도 부럽고 가끔가다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 왈 “너도 조금만 버리면 가능할꺼야..” 동원님도 버리고 사시나요?
글쎄요.
다른 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해보면
그들이 갖고 있는 것과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우선 대부분 집을 갖고 있는데 그 가격이 저의 집의 두세 배는 족히 되요.
우리 집에도 텔레비젼은 있지만 그냥 컴퓨터 모니터와 겸용이죠.
컴퓨터의 부가물이랄까.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해보면 내가 가진 것이 내 친구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요.
저는 컴퓨터와 카메라, 그리고 책에만 투자를 하는 편이죠.
아이 과외도 거의 안시키고 혼자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편이니까요.
버리고 사냐고 물으니까 혹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상적인 것들(대표적인 예가 5.1채널 홈시어터 시스템. 거의 모든 집에 이게 있더군요)을 내가 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핸드폰이 있는데 4만원 주고 산 흑백 중고 핸드폰이예요.
하지만 카메라와 컴퓨터는 아무도 저를 쫓아오지 못하죠.
그게 내 비밀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늦여름에 걸어서 백담사까지 들어갔습니다. 7km 가까이 나오는데… 음,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는데… 버스가 들낙날락하여 영 좋지만은 않더라구요. 그리고 겨울의 백담사라.. 색다르네요.
그 버스가 아주 원성의 대상이예요.
길이 좁아서 버스가 지나가면 걷는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야 하는데다가
백담사는 걸어들어가는 그 길이 백담사나 진배없는데 그걸 버스를 타고 들어가니.
제가 처음 갔을 때는 버스가 중간까지밖에 가질 않더니
이제는 아주 절의 코앞까지 가더군요.
겨울에는 차가 다니질 않아서 보통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차를 한 서너 대 보면 그것으로 끝이예요.
백담사는 언제가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이번이 세번째 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