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빛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7월 27일 남양주 광릉에서

웃기지.
하지만 정말이야.
나는 자유를 꿈꾸며 그녀의 방으로 들었다니까.
갇히면서 동시에 자유를 얻는 그 이율배반의 세상을 꿈꾼거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도망자를 생각해봐.
도망자에게 그를 품어주는 방은 갇히면서 동시에 무한한 자유의 공간이 아니겠어.
아무리 넓고 높은 들판과 하늘을 가진 세상도 속박으로 뭉쳐져 있으면
그건 발디딜 틈을 찾을 수 없는 좁은 세상이 되어 버리지.
아무리 좁은 가슴도 그 안에서 날 수 있으면
그건 폭과 높이에서 끝을 찾을 수 없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확장이 되지.
난 그런 자유를 꿈꾸며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녀의 방에 갇혀 버렸어.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 그녀의 방에 들었을 때,
그녀는 ‘집나온 그녀’였어.
내 자유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집나온 그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
집이란 것이 우리들에게 걸고 있는 그 현실적 기대를 생각해봐.
그거 너무 숨막히지 않아.
집나온 그녀에게선 집의 그 숨막힘과 속박이 없지.
그런데 그녀의 방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집나온 그녀가 살던 방이 우리의 집이 되어 버렸어.
중심이 잡히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집은 언제나 숨이 막혀.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삶을 삶이란 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리며 받아들이지.
바깥에서 빛이 어른거리는 군.
난 빛이 되고 싶어.
왜냐구?
빛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법이 없고,
또 문을 닫아놓는다고 나가지 못하는 법이 없는 것 같으니까.
빛은 그녀의 방으로 들어온다기 보다 그녀의 방으로 스며들지.
그녀도 빛이 들어온 걸 가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해.
그렇지만 몸으로 사는 나에겐 그 은밀함이 없어.
어쩌다 창에 조금의 틈이 생겨도 난 몸으로 살기 때문에
내 덩치로는 문이 열리지 않는 한은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고,
또 나가면 그녀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그녀의 방으로 다시 들어올 수가 없어.
그래서 이제는 그녀의 방에서 살려면
그녀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들어.
빛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전에는 그녀와 몸을 뒤섞으며 뒹굴며 살았었지.
방은 어두웠지만 그렇게 그녀와 몸을 뒤섞을 때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 비칠 작은 빛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
빛으로 산다는 건,
혹시 이제부터는 내 스스로 빛을 내며 살아가야 한다는게 아닐까.
우리의 빛이 아니라 내 스스로 빛을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예전에는 바깥은 내다보지도 않고 방에 쳐박혀 살았는데,
그러면서도 세상이 어둡고, 오히려 그 어둡던 방이 밝았는데,
오늘따라 방이 너무 어둡고 바깥은 환하군.
아웅, 너무 어두워.
문틈으로 세상을 엿보면서 빛을 모아 봐야 겠어.
이렇게 또 한동안 살아가다 보면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알아.
아웅, 그래도 요즘은 방이 너무 어두워.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2일 서울 창덕궁에서

6 thoughts on “창과 빛

    1. 내부 출입은 불가지만 한쪽 문은 열어놓잖아요.
      열어놓은 문쪽에서 닫아놓은 반대편 문을 찍으니까 실내에서 찍은 효과를 볼 수 있었어요.
      물론 실내로 들어간 건 아니구요.

    1. 전부 대낮에, 그것도 안에서 바깥을 보고 찍은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정말 밤에 불켜진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자세히 보면 가구가 약간 보이기도 한답니다.

  1. 역시 궁의 문창살이 훨씬 오밀조밀 멋스럽네요.
    저런 문이라면 아침에 일어날때도 기분좋은 편안한 아침햇살을 줄거같아요.
    크고 넓은 유리문과는 다른 아늑함같은것.

    1. 그러고 보니 둘이 하나는 왕이 살아서 살던 곳이고, 다른 하나는 왕이 죽어서 살고 있는 곳이네요. 죽어서 살고 있는 곳?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어쨌거나 둘다 왕의 집에서 찍은 건데 다르긴 다르군요. 대화를 하다보면 이렇게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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