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눈이다”라는 외침 하나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창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그러한 눈의 마력은
아마도 세상을 모두 하얗게 바꾸어버리는
그 흰빛의 마술일 것이다.
그렇게 눈이 오면 세상은 한순간에 달라보인다.
어디나 깨끗하고 청결해 보인다.
시인 안수환은 그의 시 속에서 ‘페인트공’의 투덜거림을 빌어
“제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은//깨끗한 청결만 좋아한다니까”라고
꼬집은 적이 있지만
깨끗한 청결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눈에 대한 반가움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것 같다.
2월 7일에 서울에 큰 눈이 내리면서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고,
그 하얀 세상을 그냥 집안에서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것으론 마음이 차질 않았다.
그래서 인근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에 올랐다.
눈내린 검단산은 태백산이나 설악산에 못지 않았다.
눈은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
거친 기세로 바람을 타고 나를 때는 눈발이라 불린다.
부드럽게 지상으로 내려앉을 때는 눈송이라는 말이 적당하다.
그리고 눈이 나무가지에 둥지를 틀면
그때는 눈꽃이 된다.
보통 때라면 눈이 어지러운 덤불이 있었을 자리이다.
눈이 그 헝클어진 덤불을 하얗게 채우자
그 순간 덤불의 어수선함은 어디로 가고
순백의 아름다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보통은 검단산을 오르는 내내
길의 양옆으로 자리한 무성한 나무숲이
시야를 막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검단산에 눈이 내리면
시야를 막던 그 숲의 나무로 자꾸만 시선이 돌아간다.
정상을 생각하며 앞으로만 오르던 길을
눈내린 산에선 자꾸 옆을 보며 가게 된다.
옆을 보며 가다보니
산을 오르는 길이 마치 평지가 된 기분이다.
검단산의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오늘은 흰눈이 먼저 정상을 차지하고
제가 걸어간 길을 하얗게 안내하고 있었다.
바람끝은 매섭고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도 만만치 않지만
산전체가 모두 꽃나무로 가득찬 풍경은
잠시 우리들로 하여금 겨울을 잊게 만든다.
눈이 내리면 모든 나무가지가 흰빛으로 치장을 하고
누가누가 더 희나
흰빛을 겨룬다.
분명 가지끝에 내려앉은 눈에 의해 눈꽃이 피고,
또 세상이 눈에 덮여 하얗게 된 것이건만
한참 산을 오르다보면
가지끝에서 눈꽃이 피어나고
그 눈꽃이 날려 숲이 하얗게 덮힌 느낌이다.
만년 청년 소나무는 오늘 졸지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쭈볏쭈볏 세우고 있던 솔잎을
하얗게 늘어뜨려 수염으로 삼았다.
바람이 흔들자 에헴, 에헴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오늘은 눈길을 걸어 정상에 오른다.
그 하얀 길을 걸어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내내 주변이 모두 하얗다.
온통 하얀 빛으로 시선이 채워지고,
그러다 보니 그 길을 오르며
들이쉬고 내뱉는 가뿐 숨도
오늘은 모두 하얀 빛인 것 같다.
검단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면 팔당호가 내려다 보인다.
오늘은 팔당댐을 사이에 두고
위쪽과 아래쪽이 그 색깔을 분명하게 가르고 있다.
위쪽으로는 호수를 덮은 얼음 위로 하얗게 눈이 덮여있었고,
아래쪽으로는 물이 제 물빛 그대로 일렁거리며 서울로 흘러가고 있었다.
검단산 정상.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다보면
퇴촌 방향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 검단산은 하남시는 물론이고 인근 서울의 주민들도 많이 찾아
평일에도 상당히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다.
그러나 눈온 날의 검단산은 한가했다.
올랐다가 내려오며 만난 사람들을 모두 꼽아야 20여명 정도였다.
내려가는 길도 여전히 흰눈으로 덮여있었다.
흰빛 산길은 내려가는 길의 호젓함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검단산의 중턱에는 약수터가 하나 있다.
검단산의 약수터는 사람들의 갈증난 목만 축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약수터는 목마른 사람에겐 물을 주고,
시간이 궁금한 사람에겐 시간을 알려주며,
기온이 궁금한 사람에겐 기온도 알려준다.
나는 시간과 기온은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바가지에 가득 채운 약수로
목의 갈증만 축였다.
약수터에서 내려보니 하남시의 여기저기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도시의 인근에 이런 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둠에 쌓인 산길을 손전등으로 밝히며
휘적휘적 산길을 내려갔다.
8 thoughts on “눈이 오면 검단산도 화려하게 변신한다”
그날 우리 가족도 검단산 갔었는데.
나니아 나라 같았어요.
근데 우리 갔을때는 정상에 안개가 너무 심해서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어요. 안개속이 꿈속같았어요.
다섯식구 총출동 설산등반 오래 기억할거예요.
저는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눈이 어느 정도 약해졌을 때 나섰죠.
원래는 미사리 한강변에서 사진찍을 예정이었는데
걷다보니 팔당까지 가게 되어 결국은 검단산에 올라가고 말았어요.
오전에는 눈발이 강해서 아주 보기 좋았을 거예요.
어제도 검단산에 다녀왔어요.
보름달과 지는 해를 모두다 찍었는데 잘 나왔는지 이제 살펴봐야 겠네요.
아, 이 사진들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동네 검단산 맞어?
사진은 그날 눈풍경의 10분의 1도 못 옮겼어요.
가는 내내 마음이 들뜨더군요.
사실 멋진 장면이 아주 많았는데 렌즈 갈아끼우기 귀찮아서 제대로 잡지는 못했어요.
너무 추우니까 렌즈를 그때그때 가는게 어려워요.
팔당쪽으로 올라가서 약수터 길로 내려왔죠.
어두워진 산길을 전등불로 밝히고 홀로 내려올 때면 산을 혼자 독차지한 느낌이 들어요.
오늘 또 눈이 내린다고 하니 내일 일찍 퇴근하여 한번 올라가 보시는 것도 좋으실듯.
팔당쪽 길로 올라가야 풍경이 좋더군요.
폭설이 왔다고 해서 이번엔 또 어디를 가셨을까 봤더니 태백산, 검단산.. 눈구경 잘 했습니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 산호제입니다. 일년동안 영하로 내려가는 적이 없는 무덤덤한 기후입니다. 이 곳에서 26년동안째 살지만 이 미국이란 데는 살면 살수록 떠나고 싶은 곳이죠. ..부럽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7년인가 8년인가 살다가 지난해 귀국한 친구가 있어서 자주 만나곤 하는데 사진찍는 입장에선 미국의 이국적 풍경이 주는 독특함 때문에 미국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 친구의 사진을 보면 분위기가 너무 자유롭게 느껴지더라구요.
세상에..그눈에 검단산을 다녀 오셨네요…
안그래도 혹시나..했었는데..검단산 등산로도 만만치는 않은데…고생하셨겠어요…덕분에 눈에만 담아두었던 풍경 다시 되새겨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해요^^
원래는 미사리 한강변에서 사진찍고 있었는데
검단산이 가까이 오니까 산이 워낙 아름다워서
조금조금 올라가다 보니 정상까지 되었죠.
한적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