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함께 놀다

눈이 오면 그냥 신나는 것은 아니다.
눈이 오면 눈과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다.
오, 눈썰매장이나 스키장에 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
그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람은 내 기억에 시인 황인숙이다.
황인숙은 눈이 내리는 날,
그 풍경을 옮겨 시로 삼았다.

무슨 걸음이 저럴까?
비틀 비틀 비틀
저 뒤를 쫓아가면
비틀 비틀 비틀
난 볼 수 있을까?
비틀 비틀 비틀

발자국이 찍힌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종으로 횡으로 대각선으로
사지팔방으로 그들은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고
정연하게 흩어지고
어지럽게 모인다.
분주히 안테나를 세우고
그들은 교신하고
그들은 보이지 않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자꾸만 자꾸만 찍혀
자기의 발자국이 자기의 발자국을
자기의 발자국이 남의 발자국을
자꾸만 자꾸만 밟으면서 자꾸 주파수를 바꿔 교신하면서

비틀 비틀 비틀
걸음을 멈추니 보인다
볼품 있이 커다란
하나의 발자국.
–황인숙, <눈> 전문

그러니까 눈오는 날엔 눈 위에 발자국만 찍으며 걸어도
얼마든지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놀 수 있다.
그러니 눈오는 날엔 나가서 즐겁게 놀아보자.

Photo by Kim Dong Won

아아아아아, 하얗게 외치기 놀이.
원래 눈이 오기 전엔 깊게 파인 나무 둥치 속에서
모든 말이 어두컴컴하게 웅얼거리고 있었으나
눈오는 날 그 속을 하얗게 채워놓으면
그 순간 하얀 외침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부바 놀이.
어릴 적 할머니께선 나를 등에 업어주실 때마다
등을 내밀며 어부바라고 하셨다.
오늘은 굽은 나무의 등을 빌려
눈이 그 위에 업혔다.
아, 등은 언제나 따뜻해.

Photo by Kim Dong Won

말타기 놀이.
아이고, 등휜다.
빨리 가위 바위 보 해.

Photo by Kim Dong Won

봅슬레이 놀이.
봅슬레이가 꼭 달려야 맛인 것은 아니다.
요렇게 홈에 올라타고 있으면
가만이 있어도 씽씽 달리는 기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시루떡 놀이.
돌쟁반에 받쳐든 2층 시루떡이요.

Photo by Kim Dong Won

누가누가 더 크나 키재보기 놀이.
이상하다 어제는 분명히 내가 더 컸는데.

Photo by Kim Dong Won

견우 직녀 놀이.
눈나라의 견우와 직녀는
나무 다리를 타고
하나는 위로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오며 만난다.

Photo by Kim Dong Won

난간타고 놀기.
다리 난간이 이렇게 둥글면
난간타기 놀이가 더욱 아슬아슬해.

Photo by Kim Dong Won

눈사람 놀이.
곰은 백일 동안 마늘먹고 사람이 되었다지만
눈은 눈밭에 이리 뒹굴 저리 뒹글 뒹글다 보면 사람된다.

Photo by Kim Dong Won

눈밭의 결의 놀이.
관우와 장비, 유비는 도원에서 결의를 했다지만
나무 3형제는 눈밭에서 결의를 한다.
올해도 이 겨울을 이기고
다가오는 봄에 또 파란 잎을 피우자.

2 thoughts on “눈과 함께 놀다

  1. 여전히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사진들로 감사합니다^^

    ┏정월대보름┓
    ☆*액은막고*☆
    *기쁜일 좋은일*
    ┗ 가득하셈 ┛
    ♡★♡

    보름달 볼수 있는 날씨면 좋겠어요^^
    사무실 일이랑 동네 행사, 게다가 집안일까지
    넘 많아서 정리가 안되네요
    주말 잘들 지내시구요 월욜날 뵈요^^
    부럼깨고 귀밝이술도 잊지마셈~~!
    아참 오늘 오곡밥과 보름나물 드시고
    나무 아홉짐 지어 오는 날인것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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