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한 노래 – 이소선합창단의 고 임기윤 목사 43주기 기억 예배 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7월 26일 고 임기윤 목사 43주기 기억 예배 공연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

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7월 26일 수요일, 고 임기윤 목사 43주기 기억 예배에 추모의 노래로 함께 했다. 예배는 종로5가의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마련되었다. 임기윤 목사는 부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며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분이다. 1980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살인마 전두환의 계엄사 부산지구합동수사단에 참고인으로 출두한 뒤 심문 도중 졸도하여 부산대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가혹행위에 의한 죽음이 의심되는 정황이다. 현재 가족들이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예배는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예배가 민주화를 위한 임기윤 목사의 활동을 돌아보고 기억하기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예배의 하느님은 우리가 그동안 교회에서 흔하게 접하던 하느님과는 많이 다르다. 대개 우리가 접하는 하느님은 믿음으로 천국을 보장해주는 하느님이나 임기윤 목사 기억 예배의 하느님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자들을 위해 힘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이다. 그 길의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도록 마음을 잡아주시는 하느님이다.
예배는 또 기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가 2천년전의 한 청년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기독교라고 했다. 기억은 단순히 잊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불의에 맞서 부단히 싸우며 신의 이름으로 걸어간 길은 우리의 기억이 될 때 현재의 길로 이어진다. 기억은 오늘의 길을 열어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예배는 사람들이 모여 임기윤 목사를 기억하며 길이 보이지 않는 오늘의 삶에서 길을 찾는 일이기도 했다.
이소선합창단은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첫 곡은 <군중의 함성>이었다. 노래는 “오랜 시련에 헐벗은 저 높은 산 위로 오르려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우러러보다 그만 지쳐버렸네 산을 에워싼 강물은 유유히 흐르네”라고 시작된다. 노래는 상징적이나 임기윤 목사가 걸어간 길과 겹쳐지면서 이 땅의 현실이 된다. “오랜 시련”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은 고초와 희생이 되고 “저 높은 산”은 민주화된 세상이 된다. 그 산은 지금 헐벗었다. 사람들이 꿈꾸는 민주 세상과 현실이 큰 괴리를 갖고 있다는 뜻이리라.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민주 세상을 꿈꾸며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지친다. 시간은 지친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저 흘러만 간다.
그러나 노래는 이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노래한다. 이 예배의 하느님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지칠 때 사람들에게 의지와 힘이 되어주신 하느님이다. 임기윤 목사의 하느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친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내기에 이른다. 그러자 노래가 “저 높은 산에 언덕 넘어 나는 갈래요 저 용솟음치는 함성을 쫓아 갈래요”로 바뀐다. 멀리 우리를 이끄는 함성이 합창단의 노래 소리로 우우우 울리고 있었다. 이제 그 함성은 더 커질 것이다. 노래하는 이들이 그 함성에 또 목소리를 보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커져 이 땅 모든 민중의 목소리가 그 함성에 담기면 그때 이 땅의 민주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길이 될 것이다.
합창단이 부른 두 번째 곡은 <상록수> 였다. 이날따라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가사가 있었다. 그것은 “이기리라” 였다. 이기리라는 말은 노랫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반복되다 보니 그것은 이기리라는 예언을 넘어 이기겠노라는 다짐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굳은 다짐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그러니 민주화의 길이 승리로 이어지는 필연이다. 임기윤 목사에겐 그것이 신의 이름으로 올 필연이었을 것이다.
아는 이 중에 카톨릭의 사제로 있는 친구가 있다. 친구가 올려놓은 글귀 중에 성경의 구절이 있었다. 마치 이 예배를 위해 예비해 놓은 말과도 같은 글귀였다. 그대로 옮긴다.

시편 93(94) / 주님은 의인의 보호자
3 주여 악인들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 악인들이 흥청대리이까.
4 버릇없이 함부로 지껄이리이까
죄를 지으면서 뽐내리이까.
5 주님 그들은 당신 백성을 짓밟으며
당신의 기업을 괴롭히나이다.
6 과부와 나그네를 쳐죽이며
집 없는 아이들을 죽이나이다.
7 그러면서 이르기를 “주님은 안 본다
야곱의 하느님은 모른다” 하나이다.
…………….
17 주께서 이 몸을 돕지 않으신다면
어느덧 내 영혼은 침묵 속에 살았을 것을.
18 “다리가 휘뚝거린다” 생각이 들 때
주여 당신 은총이 나를 붙들어 주나이다.
19 마음속에 걱정이 거듭 쌓일 때
당신의 위로가 내 영혼을 기쁘게 하나이다.
20 법의 허울로 사람을 괴롭히는 불의한 법정이
어찌 당신과 벗할 리 있으리이까.
21 사람들이 의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애매한 죄를 씌워 피를 흘리려 들지라도,
22 주께서는 분명 나의 보루 되시고
하느님은 이 몸 숨길 바위가 되시리라.

오늘 이소선합창단의 노래는 그 길을 하느님께 의지했다. 날이 뜨거워진 여름날에 반드시 이기겠노라는 다짐이 노래로 울려퍼졌다. 바깥의 나무는 상록수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모두 푸르러 있었다. 모두가 상록수였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말씀에 의지했다. 오래 전의 기억이 오늘의 길을 열고 그 길을 합창단이 노래로 함께 했다. 노래의 지휘는 임기윤 목사의 아들인 임정현이었다. 아버지의 길을 이제 아들이 걷고 있었다. 그가 걷는 길을 많은 이들이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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