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가끔 강원도의 국도를 달려 한밤중에 동해로 갔었다. 길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질 않았다. 백밀러를 보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오직 시커먼 어둠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밤에 동해로 가는 길에 한 번은 오대산의 진고개를 넘어가다 차를 세우고 불을 꺼보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정말 진한 어둠이었다. 잠시 혹시 나도 어둠이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분명 그 어둠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데 내가 보이질 않았다. 사랑을 잃었다 서글플 때마다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다만 어둠이 짙어 보이지 않는 것이라 위로하며 상실의 시간을 견뎠다. 나를 지우던 어둠이 잃은 사랑의 날들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