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장흥의 천생연분마을 마을회관에서 모꼬지 시간을 가졌다. 모꼬지는 MT 대신 쓰이고 있는 순 우리 말이다. 모꼬지는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8월 27일의 아침까지 이어졌다.
이소선합창단의 모꼬지를 요약할 수 있는 두 개의 단어를 고른다면 단연 술과 노래이다. 세상의 술들이 합창단의 모꼬지를 핑계삼아 모두 얼굴을 내밀기라도 하는 양 온갖 술이 등장한다. 소주와 맥주는 기본이며 집에서 담근 술이 이미 술이라서 몸에 안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담근 내용물이 좋은 것이라 마시면 건강하다는 헛소문을 앞에 사실처럼 내세우고 단원들의 술잔을 유혹한다. 그런 술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할 수는 없다. 좋은 술은 일찍와서 눈독을 들여야 술을 분배하는 사람에게서 한 잔을 얻어마실 수 있다. 간혹 양주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을 때도 있다. 올해 그런 환호는 없었으나 안주마저 압도하는 술의 양은 여전했다.
술만 마시진 않는다. 항상 오락시간을 가진다. 올해는 테너 심지훈이 준비했다. 퀴즈를 내고 맞추면 마련한 상품을 준다. 퀴즈는 우리가 연대하러 다녔던 쌍차는 원래 어떤 말을 줄인 말인데 원래의 말은 몇 글자일까요 같은 식이다. 쌍용차와 같은 안이한 생각으로는 이 퀴즈를 맞출 수가 없다. 원래의 말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말을 알았다고 해도 답이 충족되지 않는다. 재빨리 글자수를 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갖 수치가 난무하다 누군가 얼떨결에 답을 맞춰 상품을 타가곤 한다.
그리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 사람들 예닐곱이 뭉쳐 같은 팀을 이루면서 네 팀을 만들고 또다른 오락 시간도 가졌다. 각팀은 심지훈이 준 스케치북에 다른 팀이 오직 몸으로만 설명해야할 그림을 여러 개 그린 뒤 대결을 할 두 팀씩으로 나누어 많이 맞추기 대결을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림을 독해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일 때가 많았다.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는 뜻이다. 왁자지껄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오락은 결코 모꼬지 시간을 요약하는 대표적 단어가 되질 못한다. 그 시간을 점유하는 것도 역시 술이다. 오락은 술마시는 시간을 잠시 웃음으로 거들 뿐이다. 오락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심지훈은 준비는 많이 했는데 술에 빼앗긴 집중력을 모으는데는 실패하여 단 두 가지만 하고 오락 시간을 접어야 했다.
술이 목까지 차오를 때쯤 되면 노래의 시간이 시작된다. 거의 모두 시위 현장에서 불리어지는 민중가요들이다. 때문에 놀러온 것인지 시위하러 온 것인지 혼란에 처하기도 한다. 기타가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며 연주자를 끊임없이 바꿀 정도로 연주자는 많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술의 시간 중간쯤에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여유있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내가 에어팟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애플에서 나오는 이어폰이며 소음 제거 기능이 탁월하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음악과 함께 여유있게 눈을 부쳤다. 그러나 내 잠을 흔들어놓겠다고 잠자는 내 옆에 와서 고래를 불러다 고래고래 함께 노래를 불렀던 베이스 김우진의 노래를 막을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일어나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노래책 두 권을 섭렵하고 나서야 노래가 그 순서를 접을 정도로 노래는 계속된다. 대개 그때쯤 날이 밝는다. 하지만 올해는 노래의 순서가 어둠 속에서 접혔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김우진이 하루 전날밤 두세 시간밖에 못자는 바람에 올해는 노래로 날을 밝히는 그간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올해 끝까지 남아 술에 맞선 용자는 젊은 피 베이스 김언철과 합창단 대표인 알토 김종아였다. 날이 다음 날로 넘어가 네 시를 넘긴 시간에 둘이 카메라를 향하여 손을 흔드는 장면을 끝으로 나는 잠에 들었다. 술과 노래로 요약되는 합창단의 모꼬지 전통은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