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의 놀이터이다 – 잠실 롯데월드에서

원래 밤은 어둠이 활보하는 시간이다.
어둠이 활보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시야엔
시커먼 어둠밖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낮의 세상 풍경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빛이 풍요로운 그 시간엔
어디나 빛이 지천이지만
사람들은 온통 세상을 빛이 뒤덮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우리의 눈엔 빛보다는
그 빛 속에 제 색깔과 제 형상을 드러낸 세상이 보일 뿐이다.
어둠은 세상을 가리고, 빛은 세상을 드러낸다.
그 때문에 아무도 빛이 세상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늦은 밤,
밤이라서 더욱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나는 한낮의 그 풍요롭던 빛이
사실은 그 빛으로 세상의 다른 모든 빛은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한낮의 그 빛은 하늘에서 온다.
내가 도시의 밤거리를 걸을 때,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으로 피어나는 그 빛은 땅의 빛이다.
한낮의 빛이 눈을 찌를 듯 강렬할 때
땅의 빛은 켜있어도 숨죽인 형상이 역력하다.
한낮에 켜있는 가로등을 생각해보라.
그 빛은 삭제되어 있으며, 왜소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세상에 어둠이 들면 이제 땅의 빛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어둠은 빛의 놀이터이다.
나는 종종 암흑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중세가
사실은 어둠의 시대가 아니라
하늘의 빛이 땅의 빛을 억누른,
그러니까 빛에 의한 빛의 억압 시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현대는 그 땅의 빛을 되찾으면서
어둠을 빛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
2월 25일 토요일, 갑자기 그 땅의 빛이 그리웠다.
나는 늦은 시간까지 어둠 속에서 놀고 있을 그 빛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잠실의 롯데월드를 찾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밤이 오고 어둠이 짙어지면
그곳은 어둠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섬이 된다.
그 빛의 섬에선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즐겁고 흥겹게 놀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한낮의 빛 속에서
이곳이 마법의 성임을 알리는 글자는
석고상처럼 굳어있었다.
그러나 밤이 오면
그 글자는 살아서 피가 돌기 시작한다.
굳어있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

Photo by Kim Dong Won

낮에도 엘리베이터는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낮에 내가 받은 인상은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내장같다는 느낌이었다.
밤은 그 투명함을 걷어내 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진한 채색의 어둠을 채워놓는다.
그 순간 그 진한 어둠은 빛의 수로가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엘리베이터는 밤엔
혜성처럼 꼬리를 길게 끌며
그 빛의 수로를 유영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이 놀이기구는 꼬고 비틀고 뒤집으며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빛의 것이다.
빛이 어둠을 놀이터 삼아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가를 알아보려면
잠시 그 족적을 따라가 보면 된다.
보시라.
빛이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빛의 그 신나는 즐거움 때문에
아마도 밤에 이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은 더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빛의 그 신나는 즐거움이 의심이 간다면
놀이기구를 온몸으로 즐기는 빛의 움직임을
좀더 오랫동안 따라가 보면 된다.
빛은 즐거움은 이제 신나는 정도가 아니라 현란할 정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밤의 빛은 한낮의 빛과 달리 굳어있지 않다.
밤의 빛은 때로 끊임없이 깜빡인다.
밤의 빛이 깜박일 때마다
빛은 어두운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동시에 제가 서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달린다.

Photo by Kim Dong Won

오, 불이라고 착각하지 마시라.
빛을 색깔로 물들이고,
그 빛에 바람을 곁들이면
그곳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마도 한낮이었다면
저 속의 빛은 안에서 숨을 죽인채 내내 갇혀있는 신세였을 것이다.
그러나 밤이 오면 빛은 어둠의 수로를 타고
바깥으로 외출할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밤의 지붕 위에선
빛이 피워낸 꽃이 자란다.
빛의 꽃은 물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는다.
다만 물대신 적당한 어둠으로 그 주변을 적셔놓아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풍차는 평생 춤을 추며 살아가는 것이 숙명이었다.
그러나 풍차는 그 숙명은 위하여
언제나 바람을 유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곳의 풍차는 더 이상 바람을 유혹하지 않는다.
이곳의 풍차는 빛으로 장식한 스커트를 차려 입고
제 춤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풍차의 춤은 단조롭지만
그 빛의 스커트 때문에
유혹은 번번히 성공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빛은 사실 땅보다는 물과 더 친하다.
곁에 물이 있을 때면
빛은 예외없이 그곳 깊숙이 발을 담근다.
빛은 물이란게
발을 담그고 놀아야 제 맛이란 걸 잘알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아파트에도 빛이 들어온다.
어둠과 빛이 적당히 뒤섞이고
그 자리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하면
그곳은 사랑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빛도
어둠이 그 빛의 놀이터이다.

2 thoughts on “어둠은 빛의 놀이터이다 – 잠실 롯데월드에서

    1. 토요일이라 사람 무지 많데요.
      공짜로 들어가는 재미에다 집에서 가까워 롯데월드에 가끔 가고 있죠.
      예전에는 롯데카드는 무조건 공짜였는데 요즘은 그렇진 않더군요.
      입장료 21,000원은 너무 비싸!
      용인자연농원이나 과천서울랜드의 밤풍경이 더 화려할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먼데다가 공짜가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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