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창의 안과 밖 – 서울 명동성당에서

2월 21일 화요일에
오래 간만에 광화문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리저리 걷던 걸음이
명동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 명동에서 가장 유서깊은 유적을 꼽으라면
명동성당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뚜렷하게 가야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걸음은
명동성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에 나는 창의 바깥에 서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시간은 오후 중간쯤으로 들어서고 있었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라
태양의 걸음도 서쪽으로 완연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창의 바깥에 선 가로등이 빛을 밝히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한밤을 꼴딱 지새고 난 뒤
아침 나절에 눈을 붙인 혼곤한 가로등의 잠은
아직 꿈결 속에 그대로 였다.
가로등이 눈뜨지 않아도
세상은 어디나 훤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빛은 풍성하여 세상은 훤했지만
그러나 창의 어디에서도 나는
맑고 투명한 유리의 질감을 얻을 수 없었다.
오던 길에 나는 이 도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걸으며
2층 카페의 사람들을 보았던 기억이다.
2층 카페는 유리의 창을 허리에 두르고 제 속을 모두 드러낸채
그곳의 사람들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의 창은
아무 것도 보여주질 않고 있었다.
내가 이 창에서 받은 질감은
유리라기 보다는 차라리 청동의 거울에 가까웠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시선을 그 창의 가까이 들이밀었을 때도
그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창은 청동의 질감을 더욱 강화했다.
마치 오래도록 닦고 윤을 낸
표면이 반지르르한 청동의 거울이라도 되는 양
바깥의 풍경이 제 모습을 그 창에 비추고 있었다.
창의 질감이 투명하면 그 속이 가볍게 보이지만
청동의 질감으로 그 속이 차단되면
그때의 느낌은 묵직하다.
창의 느낌은 매우 무거웠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창이 정말 유리로 된 것일까?
정말 빛들이 유리가 안내하는 투명의 수로를 따라
저 창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갑자기 창을 올려다보며
그것이 궁금해졌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건물은 하늘높이 치솟고 있었다.
마치 이 건물의 뜻이 저 높은 하늘에 있다는 듯이.

Photo by Kim Dong Won

건물의 한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문의 느낌은 청동의 질감을 가진 그 건물의 창처럼
묵직하기 이를데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건물의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발끝을 조심스럽게 소리없이 내려놓는 것이었다.
건물 안은 어두웠으며,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주인은 조용한 정적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그렇게 아무 말이 없이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 조용한 정적 속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정적은 곧 나의 정적이 되었고,
그의 정적이 나의 정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곧 내 마음의 정적이 되었다.
그의 정적이 내 마음의 정적이 되었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내가 선 곳으로
그대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창에서 묻어난 청동의 질감과
그것이 촉발시킨 어떤 궁금증이
내가 이 속으로 걸음을 하게 된 연유였지만
그는 제 속을 들어온 내게
그 궁금증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의 정적으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곳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주었을 선물을
내게도 주었다.
그의 선물은
고요한 마음의 평화였다.
나는 그가 내게 준 선물이 너무 좋아서
잠시 동안 그 속에서 고요한 적막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시후
소리가 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밖에서 보았을 때 청동의 거울이었던
그 창이
안에선 분명 창이었다.
둥근 그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빛은 창을 통과하면서
이 안에선 꽃이 되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바깥에 있을 때
그 환한 세상에서 창은
청동의 질감으로 굳게 무장을 한채
아무 빛도 통과시키지 않을 듯 보였다.
내가 아무 말이 없는 그의 정적 속으로 걸음하여
그 속에 서 있을 때
그 속은 어두웠으나
빛은 창을 투과하여 꽃으로 내게 안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올 때
돌아보니 그가 팔을 벌리고 있었고
들어가기 전에
뜻을 하늘에 둔 듯
높이 치솟고 있는 듯 보였던 건물이
이제는 그 뜻을 땅에 둔듯
그의 뒤에서 이 지상을 항하여 몸을 숙이고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가 있다.
세상이 훤한데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암울한 시절,
그곳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빛이 되었다던 얘기였다.
그 얘기가 어떤 뜻인지 이제 알 것도 같았다.

6 thoughts on “그 창의 안과 밖 – 서울 명동성당에서

  1. 잠시라도 저 안에서 쉬다 오고 싶습니다.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기도하고 울고 싶으면 울고……..
    산사는 전동횔체어타고 혼자가기엔 무리지만 말입니다.

    1. 마치 어머니 뱃속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죠.
      언제 서울오면 원철씨랑 해서 한번 가보도록 하지요.
      성당이나 교회를 안가본 것은 아니지만 명동성당은 분위기가 독특했어요.
      갑자기 유럽의 유명한 성당들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2. 바깥풍경은 중세시대의 수도원느낌처럼 차갑고 무겁고 무섭기까지 한데, 내부풍경은 적막이 흐르기는 하지만 빛이 참 따뜻하고 예쁘네요. 성당내부에는 들어가 본적이 없었는데, 덕분에 구경잘했습니다. 명동성당은 진짜 멋진 건축물인것 같아요.

    1. 정적, 즉 고요함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나는 숨막히는 무게감이고,
      하나는 고요하고 조용한 평화의 느낌인데
      이 날 명동성당에 들어갔을 때
      이상하게 그 정적이 평화로움에 가깝더군요.
      빛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정반대의 세상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을 주제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조금 아쉬웠어요.
      보수 중이라 각도를 방해하는 구조물이 많아서요.
      안은 상당히 어두워요.
      사진에 나온 빛의 5분의 1 정도.
      삼각대에 긴 노출 때문에 좀 밝게 나온 것 뿐이예요.
      저 말고도 사진찍는 사람은 여럿 있더군요.

  3. 오랜만에 명동 성당을 보네요–+….
    정말 오래전에 저곳을 무시로 드나 들었었는데….
    전 요즘 감기끝에 장염에 걸려서 고생 했었지요
    건강 각별히 유의하세요

    1. 빨리 건강을 되찾으시길.
      어쩐지 어제 사진찍을 때 그곳 사람들이 하나같이 행복해 하더니 오늘 새로운 추기경 서임 소식이 있네요.
      축하드려요.
      보수 공사 중이라서 보수가 다 끝나면 다시 한번 가야할 것 같아요.
      수리를 위하여 설치해놓은 구조물 때문에 사진 각도 잡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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