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또다른 숨이다 – 서울 인사동에서

서울은 사실 살기에 그렇게 탐탁한 도시는 아니다.
하루 종일 자동차 소음이 끊이질 않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때로는 길을 걸을 때도 줄을 서서 걸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서울이 싫은 가장 큰 이유를 손에 꼽자면
그것은 이곳의 혼탁한 공기이다.
나는 강원도의 산골에서 20여년을 자라다 서울로 이사를 온 관계로
더더욱 이 혼탁한 공기에 대해 예민한 편이지만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하루 종일 숨을 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때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교통의 편리함과 볼거리의 풍성함을 생각하면
어느 도시도 서울을 따를 수가 없다.
한 예로 서울에선 한 시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종로 거리에 자리잡은 인사동으로 걸음할 수 있으며,
그곳에선 길거리의 상점도 구경거리가 되거니와
아울러 많은 갤러리들이 다양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2월 27일 월요일, 나는 바로 그 인사동 거리를 쏘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끈의 욕망은 대상을 묶으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끈이 색을 가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때 끈은 무조건 대상을 묶으려 한다기 보다
자신의 색으로 대상을 물들이려 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암암리에 그 색의 끈에 물들여져 있다.
가령 한국에서 태어나면 누구나 숙명처럼 물려받는 색깔이 있다.
그때 우리에겐 백의민족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으면서
흰옷이라곤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예외없이 제 뿌리의 색깔을 흰색으로 갖게 된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 대표팀의 축구 응원을 나설 때면
그때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은 붉은 색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면서
색에 물들며
또 색에 물들고 싶어 한다.
색깔있는 끈은 우리의 그 욕망을 알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중요한 점은 세상을 물들이고자 하는 색의 욕망이 있다고 해도
세상이 그 앞에서 하나의 색으로 줄을 서면
그때부터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색이 줄을 설 때는
제 색 그대로
들쑥날쑥거려야 즐겁고 재미나다.

Photo by Kim Dong Won

길가의 어느 귀퉁이 탁자 위에서
팽이가 색을 안고 돌아가고 있었다.
팽이가 돌아가는 동안
색은 그 위에서 바람 소리가 나도록
쌩쌩 함께 달렸다.
팽이가 쓰러지자 색도 함께 쓰러졌다.
색과 팽이는 하나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의 공기는 탁하다.
인사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우리는 탁한 공기를
그곳의 문화로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는 일종의 또다른 숨이다.
우리는 대기로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때로 문화로 숨을 쉰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호흡도 공기 알갱이로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인사동은 서울에서 손쉽게 다양한 문화를 호흡할 수 있는 거리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 거리의 숨 갤러리에 들어가
그곳의 설치 예술품을 내 멋대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순수하고 뜨겁게

Photo by Kim Dong Won

글이 공중에 떠 있었다.
글을 공중으로 띄워놓으려면
먼저 투명한 비닐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글을 쓴다.
그 다음 그 투명한 비닐을 허공에 걸어놓는다.
이건 비밀인데 투명한 것을 허공에 걸어놓으면
허공이 그 존재를 슬쩍 앗아가 버린다.
그러나 글자는 앗아가지 못한다.
그러면 그 순간 그곳에 글자만 떠있게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누군가 비닐을 도려냈다.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은 구멍이 아니다.
이곳에서 도려낸 자리는 세상의 창이 된다.
말굽 모양의 창으로는
세상이 말굽 모양을 하고 들어오고,
마름모꼴의 창으로는
세상이 마름모꼴을 하고 들어온다.

Photo by Kim Dong Won

종종 예술은 그 난해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무게로 인하여
그 앞에 서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로 너무 가벼워 어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아니, 이게 뭐야.
그냥 천조각을 이어붙여 놓은 거잖아.”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음에도 조화로운 음이 있으니
색깔에도 분명 조화가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음이 그냥 듣고만 있어도 좋듯이
색의 조화 또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든 것이 제 용도에 갇혀있다.
빨래장갑도 빨래하는 용도에 갇혀 있다.
여자도 한동안 여자에 갇혀 있었다.
아니 아직도 많은 곳에서 여자는 여자에 갇혀 있다.
여자를 해방시키고 싶거든
일단 빨래장갑을 먼저 해방시켜야 한다.
그 해방을 누가 눈치채랴.
“빨래장갑도 예술이 되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키득키득 웃고 지나갈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빨래장갑이 제 용도를 성공적으로 탈출한다.
여자가 여자를 탈출하는 것도
예술의 힘을 빌면 좀더 교묘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대개의 지퍼는 거의 항상 닫혀있다.
그러나 이곳의 지퍼는 거의 항상 열려있는 분위기이다.
열어놓은 틈사이로
문화의 바이러스가 새면서
세상을 감염시킨다.

Photo by Kim Dong Won

닫아놓으면 이곳과 저곳이 서로 막히지만
반쯤 열어놓으면
이곳에서 세상이 엿보이고
저곳에선 이곳이 들여보인다.
엿볼 때 세상이 은밀한 곳까지 모두 보일 때가 있으며,
들여다 볼 때 속이 제대로 보일 때가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룹 미팅 하나?

Photo by Kim Dong Won

이건 뭐냐고 트집좀 잡지 마시라.
그런 소리 하려거든
일단 먼저 몬드리안부터 물고 늘어지시라.

Photo by Kim Dong Won

변기 아래서.

Photo by Kim Dong Won

다행이 올려다보는 동안
아무도 실례하러 오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세계 최초의 집단노천식 오손도손 화장실.
실례도 모여서 함께 하면 더욱 정겹다.
내 말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이 된다면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한번 떠올려 보시라.
나는 그 영화에서 남과 북이
대립을 화해 무드로 바꾼 결정적 계기가
메밀밭에서의 공동 실례 때였다고 생각한다.
근데 아까 내가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았던
변기가 어떤 거더라?

Photo by Kim Dong Won

색즉시공.
색은 즉 공이니라.
정말이지 색의 속은 비어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당신은 인형을 고를 수 있다.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도 된다.
보장은 못하지만
당신이 인형을 집어든 순간
그건 인형이 아니라
행운을 집어든 것일 수도 있다.
핸드폰에 매달고 다니면
당신의 모든 대화를 엿듣겠지만
절대로 당신의 비밀을 발설하는 법이 없다.
두 개를 산다면
그들을 자매로 엮어줄 수도 있다.
인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자, 이런 데도 당신은
이 인형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세상에 몇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좌우지간 무수히 많은 나라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모두 일색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인사동도 우리의 색으로 모두 덧칠이 되어 있지 않다.
인사동엔 <작은 인디아>가 있고,
그 <작은 인디아>의 입구를 밝히고 있는 불은
분명 우리의 청사초롱과는 분위기를 달리 한다.
사실 문화의 호흡은
그 다름으로 인하여 이어진다.
문화가 일색이 되어버리면
문화의 호흡은 끊어진다.
인사동에서 <작은 인디아>가 그 호흡을 지키듯이
세계 속에선 또 우리가 최소한의 <작은 코리아>을 지켜야 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한국인은 여전히 숨쉬며 살면서도
호흡의 한부분이 크게 허전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먹는 것만큼 땅에 질기게 귀속된 것이 있을까.
<털보네>의 찹쌀 옥수수 호떡을 사먹기 위해
사람들은 아예 포장마차를 둘러쌌다.
문화도 때로 그것을 호흡하고 향유하기 위해
둘러싸서 지켜야 할 때가 있다.

6 thoughts on “문화는 또다른 숨이다 – 서울 인사동에서

  1. 자연속의 사진들만 보다가 인사동거리의 예술적인 컷들을 보니, 살짝 낯설기도 하면서 재밌어요.
    색감이 살아있는 사진들이 눈에 쏙속 들어오네요.
    오늘 비가 그치고 잠깐의 짬이 나면 저도 한번 제 똑딱이 들고 나가고 싶어지네요.

    1.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배달을 나갈 때마다
      그곳의 어딘가에서 사진을 찍다가 들어오는데
      어제그제는 인사동으로 발길이 가게 되었죠.
      사진 전시회도 많고…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는 거 같아요.

  2. 늘 느끼는 것이지만..사진도 그리고 글도
    모두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있어서 좋습니다
    감기랑 아픈이 때문에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건안 하시지요^^?

    1.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요즘은 일이 좀 줄어서 그게 걱정이예요.
      그 때문에 남는 시간에 가까운 곳으로 자주 사진찍으러 나가게 되네요.
      들러주시는 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시길 빌어요.

  3. 글과 사진들 다 따뜻하네요. 인사동에 마구마구 가고싶게 해요. 특히 변기 아래서 위를 보는 사진이 맘에 들어요. 🙂 구경 잘 하고 갑니다~

    1. 쌈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인데
      아마도 대학생들이 설치한 작품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전부 건물 난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어요.
      재미나더군요.
      특히 그 변기 작품은 모두가 재미있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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